하나의 신약이 탄생하기까지는 크게 3단계를 거친다. 신약이 될 만한 후보물질을 탐색하는 발굴(discovery), 사람에게 안전하고 효과 있는 물질인지를 검증·확인하는 개발(development), 시중에 판매하기 위해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는 승인(approval) 과정이다. 단계를 단숨에 통과하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신약 1,000개에 2개 정도만이 이런 영광을 누린다. 이유는 많겠지만 국내에서는 각 단계를 매끄럽게 연결하지 못해 유망한 신약 후보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유독 많다. 학계에서 발굴한 참신한 과학기술이 기업으로 넘어오는 개발 과정에서의 ‘데스밸리(죽음의 계곡)’가 유난히도 깊다는 의미다.
지난 2015년 문을 연 브릿지바이오는 학계의 기초연구와 제약기업의 개발연구를 잇는 ‘브릿지(다리)’로 자리 잡아 신약 개발의 데스밸리를 뛰어넘겠다고 선언한 바이오 기업이다. LG화학(옛 LG생명과학) 연구원 출신이자 2000년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창립 멤버로도 활약한 이정규(사진) 대표가 주축이 돼 꾸려졌다.
회사는 직접 연구 없이 개발만을 전담하는 ‘NRDO(No Research & Development Only)’ 비즈니스 모델을 국내 바이오 생태계에 들여온 주인공으로도 주목받는다. 대학 등 외부 연구기관에서 개발한 후보물질의 권리를 사들여 임상 등을 진행, 가치를 끌어올린 후 다시 대형 제약사 등 외부에 기술이전하는 사업이다. 개발 업무 중에서도 실무는 외부 컨설턴트와 연구용역업체에 맡긴다. 한마디로 회사는 ‘두뇌’에 해당하는 역할만 하는 셈이다.
이 대표는 “우리의 핵심 역량은 좋은 후보물질을 고르는 ‘눈’과 실무를 맡아줄 외부 업체들을 잘 관리할 ‘매니지먼트’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재 영입에 정성을 쏟는다. 현재 브릿지바이오 멤버는 미국 자회사까지 포함해 총 8명. 세계적 암센터 MD앤더슨에서 경험을 쌓은 장미경 박사와 JW중외제약 수석 상무를 지낸 강신홍 박사 등 업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였다. 이 대표는 “뛰어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창립 첫해 국내 8개 투자사로부터 145억원의 투자금을 확보한 바이오브릿지는 현재 만성염증성 질환을 획기적으로 치료해주리라 기대되는 물질 ‘BBT-401’의 개발에 여념이 없다. 최근 중국에 위치한 글로벌 임상 수탁기관 ‘우시’와 독성시험 계약을 맺었으며 연내 미국식품의약국(FDA) 임상 1상 승인 신청을 할 계획이다. 실적들을 토대로 내년에는 코스닥 상장까지 추진할 방침이다.
이 대표는 국내 바이오 생태계가 성숙할수록 회사의 역할이 점점 커지리라 전망했다. 그는 “기초연구가 더 활발해져 가능성 있는 후보물질이 더 많이 나올수록, 매니지먼트가 필요한 임상대행업체(CRO)가 더 늘어날수록, 대형 제약사들의 ‘오픈 이노베이션’ 경향이 강해질수록 우리가 할 일은 더 많아질 것”이라며 “국내 바이오산업은 아직 태동기 정도지만 우리가 실력을 보임으로써 그 가능성을 확장해가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