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월8일 총선에서 대패한 보수당 테리사 메이 총리가 리더십을 잃어가고 있고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 및 부실 대응으로 정치적 입지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투표에서 EU 헌법이 부결되면서 유럽의 정치통합이 차질을 빚게 되자 미니 헌법으로 합의한 것이 2007년 리스본 조약이다. 3월 메이 총리는 하드 브렉시트를 EU에 공식통보함으로써 절차를 개시했고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라 2년 시점인 오는 2019년 3월까지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향후 협상에서 EU 탈퇴 조건이 결정되겠지만 하드 브렉시트는 EU와의 완전 결별을 의미하는 반면, 소프트 브렉시트는 이민 허용 의무를 축소하면서 EU 회원국으로서 경제적 혜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2년 내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영국은 자동으로 EU 회원국 자격을 상실하고 EU 분담금까지 물어야 하므로 최악의 하드 브렉시트 국면을 맞게 된다.
일반적으로 국제통상협상은 미리 협상의제를 교환하고 정해진 의제에 따라 협상을 하게 된다. 엊그제 19일 브뤼셀에서 시작된 브렉시트 협상은 영국과 EU 수석대표 간 상견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영국 의회의 하드 브렉시트를 위한 ‘유럽공동체법 폐지법안(great repeal bill)’ 입법도 불투명하지만 대EU 협상을 위한 전략 부재로 첫 협상에서부터 영국은 밀리고 있다. 반면 EU는 영국을 낭떠러지로 밀어 넣을 수 있는 협상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메이 총리는 하드 브렉시트를 내걸고 조기총선을 실시했지만 과반수 의석에서 한참 모자라는 선거결과로 기존입장을 고수하기 어렵게 됐다. 이미 여당 내에서조차 브렉시트 방식에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을 포함한 다수 정치인과 재계에서 소프트 브렉시트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금융 분야 및 첨단 제조업 글로벌 기업들이 탈영국을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고 브렉시트 입장을 변경하기도 어렵다. 이미 하드 브렉시트 절차가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정세는 코너에 몰린 영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도날트 투스크 EU 상임의장 등은 유럽통합에 엇박자를 내온 영국과 냉정하게 결별함으로써 다른 회원국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브렉시트에 대해 타협의 여지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개혁과 유럽통합을 내세워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메이 총리에게 “영국이 EU에 남을 수 있는 문은 열려 있다”고 언급하면서 브렉시트에 대한 EU의 시각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향후 몇 가지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먼저 EU 전 회원국의 동의가 필요하겠지만 협상 시한을 장기간 연장해 사실상 현재의 EU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소프트 브렉시트 방식을 검토해볼 수 있다. 가능한 방식은 노르웨이와 같이 EU 의무를 지면서 관세동맹체제에 남는 안이 가장 유력할 것이다. 이는 영국에 현 체제보다 더 불리해질 수 있다.
영국이 EU에 남든 브렉시트를 단행하든 간에 이참에 EU는 회원국 의무 규정을 강화하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유럽통합을 공고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동안 EU 통합과정에서 영국은 골칫거리였다. 1985년 마거릿 대처 수상이 EU 탈퇴 카드로 유럽통합체제를 크게 흔든 바 있고 유로화 도입에서도 영국은 참여하지 않았으며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정으로 유럽통합의 균열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영국과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미 발동된 리스본 조약 50조가 영국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영국은 물론이고 네덜란드와 프랑스 등에서 탈EU를 내건 인기영합적 정당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그동안 위축됐던 유럽통합론자들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당초 우려와는 달리 브렉시트가 유럽통합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