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4차 산업혁명과 은퇴 없는 삶

성대규 보험개발원장





우연찮게 영화 ‘파운더(The Founder)’를 봤다. 밀크셰이크 기계 외판원이었던 주인공 레이 크록은 52세에 맥도날드를 프랜차이즈화하고 창업했다. 말년에는 메이저리그 야구단인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를 인수해 좋아했던 스포츠를 몸소 즐기기도 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은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은퇴(隱退)란 사전적으로 물러난다는 뜻이다. 영어(retire)·불어(retirer)로도 같은 뜻이다. 19세기 말 비스마르크가 연금제도를 만들면서 은퇴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고 한다. 농업이 주요 산업이던 시대에는 은퇴가 사실상 없었다. 1차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공장에 고용된 후 은퇴가 등장했다. 공장에서는 동질의 육체적인 노동을 제공하지 못하는 나이 든 사람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20세기의 황금 성장기를 거치면서 은퇴 후 풍족한 연금으로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게 목표가 됐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고령화·저출산 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은퇴를 꿈꿔야 할까. 그렇지 않다. 첫째, 나이가 들어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인턴’은 40년 직장 생활 후 퇴직한 주인공이 젊은 여성 경영자를 인턴으로서 보좌하는 내용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 상사를 가르치려고 덤비기보다는 경험과 인품으로 자문에 응하는 인턴의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물리적인 힘보다는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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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은퇴는 일이 주는 기쁨, 나아가 자아성취를 누리지 못하게 한다. 과거 평균 수명이 70세도 안 되던 시절에는 60세 정년에 은퇴해도 괜찮았다. 평균 수명 90세가 머지않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혹자는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 사실이 서글프다고 한다. 물론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은 안타깝다. 그러나 무릎이 쑤시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농사를 멈추지 않는 농촌 고령자들도 많다. 그들이 단지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은퇴의 전제가 되는 충분한 저축과 탄탄한 연금이 보장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은퇴에 대한 환상을 가속화했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연금 재정에 기여할 사람은 줄어들고 연금을 수령할 사람은 늘어난다. 연금제도를 개혁하고 돌아서면 다시 개혁해야 하는 악순환 구조다. 일본의 유행어가 된 ‘하류노인’, 즉 수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저축도 충분하지 않아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 인구가 우리나라에서도 증가할 우려가 있다.

레이 크록은 최초 개발자가 아님에도 맥도날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집념’이라고 답했다. 참 좋은 느낌이 들었다. 강인한 근육이 요구되지 않는 미래와 건강한 고령화 시대를 살아갈 우리가 귀담아들을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건강, 일이 주는 기쁨, 연금·집념이라는 노후설계 요소를 자유롭게 결합해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있어야 행복한 노후를 기대할 수 있다. 생존만이 아니라 자아성취를 위한 삶을 위해 이제 은퇴라는 용어를 창고로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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