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석유화학’ 투자가 거침이 없다. 잇따른 인수합병(M&A)을 통해 주요 제품의 수직계열화를 구축하는 한편 적극적 투자로 ‘규모의 경제’까지 이뤄 글로벌 플레이어로 무럭무럭 커가고 있다.
롯데는 신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부터 화학사업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신 회장이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서 처음 경영을 맡은 이유도 있지만 화학사업이야말로 롯데그룹을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는 지난해 3조원을 들여 삼성SDI의 케미칼 사업 부문(롯데첨단소재)과 삼성정밀화학(롯데정밀화학), 삼성BP화학(롯데BP화학)을 인수했으며 지난 2013년에는 이탈리아 국영석유회사 베르살리스와 합작한 ‘롯데베르살리스 엘라스토머스’를 세웠다. 2015년 4조3,000억원 규모의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가스전 화학단지를 건설해 상업생산에 들어갔으며 현재는 미국 루이지애나 에탄분해시설(ECC) 건설에 3조원을 쏟아붓고 있다. 이들 사업에만 투자된 자금이 10조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신 회장이 인도네시아 나프타분해시설(NCC) 투자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은 롯데그룹 화학사업의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지난해 미국의 엑시올사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검찰 수사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올해는 싱가포르 주롱섬 아로마틱컴플렉스(JAC) 인수전에 나섰다가 경쟁사의 자금력에 밀린 아픈 기억도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증설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그룹은 인도네시아 NCC 투자 이외에 올 들어서도 여러 차례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당장 여수 에틸렌 공장의 생산능력을 에틸렌 20만톤, 프로필렌 10만톤 늘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롯데정밀화학의 울산 헤셀로스 공장 증설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석유화학 업황이 다소 위축되면서 증설 투자가 지연될 수 있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업황은 반복되는 것일 뿐 경쟁력을 키워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 회장의 경영철학이 ‘뚝심’ 있는 투자 결정을 하게 만든 원인으로 꼽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화학사업 분야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업황 사이클을 극복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며 “후퇴기에는 다소 이익 수준이 떨어지겠지만 최근 1~2년 동안 보듯 활황기에는 역대급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롯데가 신 회장이 신규 시장으로 꼽고 있는 베트남·러시아·인도네시아·중국 등 새로운 ‘브릭스(VRICs)’ 진출의 교두보 마련 차원에서 ‘통 큰 투자’를 결정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신 회장은 그간 해외 사업을 발판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혀왔다. 오는 2018년까지 그룹 매출을 200조원으로 늘리고 이 중 30%를 해외에서 올린다는 ‘비전 2018’에서도 브릭스 시장은 핵심을 차지한다. 경제성장률이 높고 인구가 많아 소비잠재력이 큰데다 지리적·문화적으로도 가깝다는 게 신 회장이 최우선 해외 진출 지역으로 브릭스를 낙점한 이유다.
롯데는 이번 투자를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정부와 더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됐다는 평가다. 인도네시아 측은 한국이 석유화학·철강 등 산업 부문에 투자하기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아이르랑가 하르타르토 인도네시아 산업부 장관 역시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업계 관계자를 만나 투자를 요청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인도네시아가 거듭 요구해온 투자에 적극적으로 화답함으로써 현지에서 더욱 우호적인 기업 환경을 조성할 기회를 잡게 된 셈이다.
/김우보·박성호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