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등불’로 불렸던 카타르의 국영방송 ‘알자지라(Al Jazeera)’가 중동 외교분쟁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4개국이 알자지라를 소유한 카타르 정부에 방송국 폐쇄를 촉구하고 나선 데 이어 이스라엘은 알자지라 예루살렘 지국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각국은 알자지라가 ‘무슬림형제단’ 등 테러조직에 우호적인 기사를 내보내고 팔레스타인의 호전적 행위를 부추긴다고 주장하지만 서구 언론들은 중동 왕정의 권위주의적 행태와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탄압에 비판적인 알자지라를 길들이려는 조치라고 꼬집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아유브 카라 이스라엘 통신장관은 6일(현지시간) 알자지라의 예루살렘 지국 폐쇄 및 기자들의 취재허가증 철회 계획을 발표했다. 카라 장관은 케이블·위성방송 사업자들에도 알자지라의 신호를 차단할 것을 지시했다.
이스라엘이 내세운 알자지라 폐쇄의 명분은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 등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한 4개국과 마찬가지로 테러조직 지원과 극단주의 추동이다.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알자지라가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를 지원하고 있다며 “나치독일 스타일의 프로파간다”라고 비난한 바 있다. 사우디 등 카타르 단교 4개국 역시 알자지라가 자신들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무슬림형제단에 우호적인 보도를 내보내며 테러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서방 언론들의 시각은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이 같은 주장과 달리 중동 국가들의 진의는 이슬람 권위주의 왕정과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을 흔드는 ‘알자지라 길들이기’라는 것이 서방 언론들의 지적이다. 실제 알자지라는 지난 2000년 제2차 팔레스타인 무장봉기 당시 이스라엘군에 폭격당한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도해 이스라엘 정부를 불편하게 했으며 가자지구를 실효 통치하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정부 간 충돌위기가 고조되던 2014년에는 하마스 지도자와의 인터뷰를 보도하기도 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최근 템플마운트에서 이슬람 성지에 진입하는 이스라엘 경찰들의 모습을 담은 알자지라의 보도가 팔레스타인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은 특히 카타르 단교 4개국의 ‘알자지라 때리기’가 2010년대 초 이슬람 민주화 시위인 ‘아랍의 봄’ 이후 격화됐다는 데 주목했다. 알자지라가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무슬림형제단은 2012년 이집트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을 탄생시키는 등 ‘아랍의 봄’ 이후의 정치적 대안으로 부상한 단체다. 하지만 무슬림형제단이 주장하는 ‘글로벌 이슬람국가’ 창설은 사우디·UAE 등 절대왕정 타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후 알자지라는 이들 국가에 눈엣가시와 같은 위협이 됐다는 것이 가디언의 분석이다.
서방 언론들은 알자지라 폐쇄 요구가가 ‘언론 탄압’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여론이 고조되고 있으며 카타르 정부도 알자지라를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아 중동 국가들의 폐쇄 요구가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하고 있다. 알자지라는 이스라엘에 법적 대응을 선언했으며 예루살렘 지국이 폐쇄돼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 등에서 방송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