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K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출 과정의 대혼란은 BNK금융이 직면한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산규모 106조원의 국내 5위 금융지주가 후임 회장 선출을 놓고 이미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두 번씩이나 파행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BNK금융 임추위는 전날 오후7시부터 후임 회장 내정을 논의했지만 5시간의 격론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임추위는 다음달 8일 재논의하기로 했다. 임추위는 이미 두 번이나 파행을 겪은 만큼 세 번째 임추위가 정상적으로 결론을 내릴지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BNK금융이 차기 회장 선출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는 것은 부산상고와 동아대 인맥으로 대표되는 양대 진영이 내부 권력암투를 벌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장호 전 회장과 후임인 성세환 전 회장은 모두 동아대 출신으로 두 전직 회장을 거치면서 동아대 라인이 BNK금융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인맥이던 부산상고 라인들이 밀려나 회장 교체기마다 두 진영이 서로 이해관계를 따지며 으르렁거리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두 진영은 부산 등 지역영업을 기반으로 해온 BNK금융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부산상고와 동아대 인맥이 서로 경쟁하며 영업력을 강화하면서 BNK금융은 무서운 성장기록을 세웠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타 은행들의 실적이 주춤할 당시에도 부산은행은 8%가 웃도는 자산성장률을 기록했고 국내 5대 금융지주로 발돋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산은행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를 이용해 부산경남 지역에서 빠르게 성장해 국내 시중은행이 발을 들여놓을 틈을 주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양대 진영의 자존심도 강하고 후임 회장을 놓고도 서로 경쟁해왔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BNK금융의 순혈주의로 인한 부작용을 지적하는 경고음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이장호-성세환에 이어 차기 회장 후보로 유력한 박재경 권한대행도 동아대 출신이다 보니 반대 진영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 “낙하산 인사를 통한 내부 개혁”이라는 빌미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차기 회장에 BNK금융 역사상 첫 외부 공모로 개방한 것도 순혈주의를 깨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내부 정서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다 보니 내부 자정능력인 내부 통제 시스템이 없거나 망가진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금융권에 정통한 한 인사는 “현재 BNK금융에서 일고 있는 논란과 낙하산 논란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면서 “낙하산이 안 된다는 내부 논리는 일면 수긍하지만 그렇다고 내부 인사가 정답인지는 더 따져봐야 한다”며 그동안의 순혈주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지적했다.
하지만 외부 공모를 통해 순혈주의로 인한 부작용을 깨려는 순수한 시도가 오히려 BNK금융을 더 거친 내홍으로 내모는 악순환이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인 김지완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부산상고 출신이라는 점과 현 정부의 인맥과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어 ‘낙하산 인사’ 논란이 증폭되면서 당초 명분이 상당 부분 퇴색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여기에 지난 4월 주가 시세 조종 혐의로 구속된 성세환 전 회장이 이날 법원의 보석 인용 결정으로 석방되면서 차기 회장 선출 구도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될 수 있어 BNK금융의 후계구도를 놓고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BNK금융은 그룹 수장의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내부나 고객 동요를 막기 위해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BNK금융 관계자는 “자칫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 리스크와 결부돼 평판 리스크가 증폭될 수 있다”며 “해이해 질 수 있는 근무기강을 계속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