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재용 선고 후폭풍] ① 靑 캐비닛 문건으로 '朴, 삼성승계 인식' 인정?

■1심 판결문 3가지 모순

② 이재용, 崔·정유라 인지 시점도 "충분히 인식"만 전제

③ "朴, 정유라 언급했다"...김종 등 특정 증인 의존 치우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심 판결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이 부회장이 승계 현안을 묵시적으로 청탁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줬다는 재판부 판단이 구체성을 결여했다는 비판이 많다. 이 부회장이 뇌물죄 형량 하한인 징역 5년을 받은 것도 재판부가 유죄와 무죄 사이에서 확신 없는 줄타기를 하다가 유죄로 기운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의 이 부회장 1심 판결문을 분석해보면 유죄 판결의 기초는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승계 작업’ 전반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지난 7월에 갑자기 발견돼 증거로 채택된 ‘청와대 캐비닛 문건’을 들었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우병우 전 민정비서관의 지시로 지난 2014년 7월께 작성했다는 이 문건은 아직도 진위 여부 등을 검찰이 수사하고 있어 객관적 증거로 받아들이기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일부 문건에는 정부 직인이 찍혀 있지 않아 실제로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도 의문이다.

판결문도 “각 보고서들이 모두 대통령에게 보고되었음을 인정한 증거는 없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고(故) 김영한씨 일지에 ‘삼성 경영권 승계문제 모니터링’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고 대통령이 매일 각 정부기관에서 다양한 현안을 보고받는 점을 토대로 “대통령이 개괄적으로나마 삼성 승계 작업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삼성 승계를 알고 있었다는 추론인 셈이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승계 인식에서 이어지는 최씨의 딸 정유라씨 승마 지원 관련 공모에 대해서도 확인보다는 추론을 통해 판단을 내렸다. 이를테면 박 전 대통령이 승마 지원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챙겼다는 점, 대한승마협회 임원 교체를 이 부회장에게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재판부는 삼성의 승마 지원 사실을 최씨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증언이나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차명전화로 2015년 9월30일 이전에도 자주 통화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바탕으로 공모관계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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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또 뇌물공여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승마 지원과 관련해 공모했음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이 부회장이 최씨와 정씨를 언제 인지했는지, 공모관계를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 없이 “충분히 인식했다고”만 했다. 그나마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과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김 전 차관과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의 증언을 근거로 “2015년 3~6월께에는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판결문에는 이 부회장이 최씨와 정씨의 존재, 영향력을 언제 알았는지에 대한 구체적 판단이 전무하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피고인은 일관되게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들의 증언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이나 박 전 전무의 증언은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전 차관은 2015년 1월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정유연을 언급했다”고 했으며 “2015년 6월24일 박 전 사장이 ‘정유라 지원 준비가 다 되었다’고 연락했다”며 재판부의 유죄 판단에 핵심 근거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의 증언은 피고인은 물론 다른 증인과 배치되는데다 직권남용 혐의로 본인도 재판 중이어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는 상태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재판부의 추측성 판단을 차치하더라도 뇌물공여에 이른 법리 판단이 의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가운데 유죄로 인정된 승마 지원 부분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단순수뢰죄 공동정범이 성립된다고 봤다. 재판부도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공무원인 전 대통령과 민간인인 최씨가 공모해 최씨가 뇌물을 받은 경우 단순수뢰죄가 성립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뇌물이 실질적으로 귀속될 필요도 없고 두 사람이 한 몸처럼 평가될 수 있는 경제적 관계에 있을 필요도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공무원과 가까운 민간인이 받은 금품을 단순수뢰죄로 처벌한 기존 판례가 거의 없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봤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1심 재판부도 유죄와 무죄를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여론을 고려해 유죄로 기운 판결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며 “전례를 찾기 어려운 판단이 항소심에서 유지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이종혁·노현섭기자 2juzso@sedaily.com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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