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3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종병원 화재현장은 처참했다. 화재가 시작된 응급실은 불에 그을려 내부를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구조물은 앙상한 뼈대를 그대로 드러냈다. 바닥에는 타고 남은 재가 더미를 이뤘고 매캐한 냄새도 가시지 않았다. 응급실 옆에는 소화기 7개만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소방 관계자는 “불이 났을 때 병원 관계자들이 자체 진화를 위해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은 이날 오전7시32분께 시작했다. 소방 당국은 2시간 만에 큰 불길을 잡고 3시간 만에 불을 모두 껐다. 이번 세종병원 화재는 단일건물 화재로는 지난 2008년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40명 사망) 이후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화재로 인한 사상자는 사망자 37명에 중상 7명, 경상 136명 등이다. 화상 피해자는 거의 없고 대부분 1층에서 급속하게 퍼진 유독가스에 질식됐다.
이번 화재는 스프링클러도 설치되지 않는 등 소방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유독가스 배출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지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와 닮은꼴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종병원은 노약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이지만 건물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옥내소화전과 비상경보기·스프링클러 등이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행 소방법상 이들 시설은 6층 이상 건물만 설치 의무 대상이다. 5층 규모인 세종병원에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경찰과 소방청은 1차적으로 화재원인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경찰은 간호사 등 화재 당시 근무했던 병원 직원들로부터 병원 1층 응급실 쪽에서 불이 났다는 공통된 진술을 확보했다. 병원 근무자들은 “응급실 바로 옆 간호사 탈의실에서 처음 연기가 올라왔다”고 진술했다.
소방 당국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대부분 70대 이상 고령자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여서 화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참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화재 사망자는 1층 응급실과 2층 병실에 있던 고령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대다수였다. 이 때문에 대피 속도가 일반인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유독가스를 흡인해 중태에 빠진 상황에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뒤 숨진 경우가 많았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3시간 만에 화재를 완전히 진압해 일단 초동대처에는 무리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소방청이 병원에 대한 소방안전검검을 꼼꼼히 했는지 여부와 지적사항에 대해 병원 측이 제대로 조치했는지는 따져볼 사안이다.
이와 관련해 세종병원을 대상으로 2주 전 실시된 소방특별조사에서 피난기구와 관련한 문제점이 발견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 당국은 지난해 12월 29명의 사망자를 낸 제천 참사를 계기로 이달 9일 밀양 세종병원 시설에 대한 소방특별조사를 벌였다.
당시 조사에서 피난기구에 ‘바닥고리’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세종병원에 시정조치를 명령했다. 앞서 병원은 약 6개월 전 자체 시행한 점검에서 소방시설 작동기능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소방 당국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천 화재와 이달 20일 서울 종로 여관 방화 등은 소방안전시설이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처럼 다중이용시설에서 화재로 인한 대형 인명사고가 계속되고 있어 화재예방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손질이 시급해 보인다.
한 재난 전문가는 “노인과 어린이·장애인·환자 등은 재난이 났을 때 신속한 대피가 어렵다”며 “모든 다중이용건물에는 화재 시 유독가스 질식을 막기 위한 제연설비 등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하는 기준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밀양=황상욱기자 김정욱기자 so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