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서서울에 가면 우리는]일제 형무소서 6월항쟁까지...역사의 현장 '서서울'

■한종수·김미경 지음, 프시케의숲 펴냄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수도 이전을 고민할 때 이방원의 책사 하륜은 ‘무악’ 천도론을 주장했다. 무악은 지금의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다. 수도는 한양으로 낙점됐지만 무악 주변 일대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사대문 안쪽의 미끈한 발전상이나 강남 등지의 천지개벽 개발과는 사뭇 다른 굴곡이 있었다.

책은 마포, 서대문, 은평구를 ‘서서울’로 아우르며 그곳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화제작 ‘강남의 탄생’의 공동저자인 한종수 세종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사업지원팀장과 도시에 문화를 접목시키고자 애써온 김미경 서울시의원이 의기투합해 함께 쓴 책이다.


서서울은 한양의 서쪽 관문 역할을 맡았다. 중국으로 가는 길이자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 평양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사신들로 북적이던 무악재 넘어 홍제원을 비롯해 모화관, 구파발 등 국가 중요시설이 들어섰다. 마포나루를 필두로 행주·양화나루를 통해 서해로 연결되는 물류 중심지 역할을 맡았다. 외국인 선교사들도 이쪽으로 들어왔고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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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울은 바람 잘 날 없었다. 일제는 서대문과 공덕동에 형무소를 만들었고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가뒀다. 한국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이어진 서울탈환전에서 연희고지가 가장 치열했다. 재건의 시대에 개발은 주로 강남 지역에 집중된 대신 서서울에는 새 바람이 일었다. 구파발에 기자촌, 홍제동에 문화촌이 들어섰다. 명지대·홍익대·서강대·경기대 등이 문을 열면서 젊음의 거리가 형성됐다. ‘동교동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시해 백기완·한승헌 등 재야인사들이 이곳에 모였고 이들과 이념적 반대편에 있던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기형도와 윤동주가 시를 쓴 곳도, 6월항쟁의 주무대로 이한열 열사가 쓰러진 곳도 바로 이곳 서서울이었다. 2002년 월드컵과 함께 난지도 일대는 경기장이 됐고 상암동은 방송단지를 이뤘다. 은평구 외곽은 뉴타운으로, 옛 석유비축기지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책이 지난 과거를 돌아 현재까지를 짚어줬으니 미래에 대한 고민은 독자의 몫이다. 수색 역세권 개발 등 한반도 통일을 예비하는 움직임, 동교동에서 신촌을 잇는 새로운 정치 세력화, 자본에 의해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상흔지역 등 모든 가능성이 서서울에서 꿈틀대고 있다. 1만7,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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