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강자’ 소지섭이라도 최근 멜로 기근인 한국 영화의 현실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감독 이장훈)는 상당한 도전작이었다. 그런데 14일 개봉을 앞둔 이 영화, 벌써부터 입소문이 좋다. 오랜만에 내린 단비 같은 ‘웰메이드 멜로감성’이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것 같다. 소지섭의 깊고 애틋한 눈빛이 한동안의 영화에서 느껴보지 못한 설렘을 안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세상을 떠난 수아(손예진)가 기억을 잃은 채 우진(소지섭) 앞에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이치카와 다쿠지의 동명 소설이 2004년 다케우치 유코 주연의 일본 영화로 만들어졌고, 이번에 한국판 영화로 또 다른 각색이 이뤄졌다.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소지섭은 ‘모처럼 볼 만한 멜로가 나왔다’는 반응에 “다행히 좋게 봐주신 것 같고 응원해주신 것 같다. 오랜만에 멜로영화가 나와서 더 응원해주신 것 같다”며 “원작이 있는 리메이크작이라 해서 걱정은 없었다. 한국에서 멜로 시장이 그렇게 넓지 않은데, 이번에 좀 잘 돼서 멜로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관객 입장에서도 사랑이 주제인 영화를 보고 싶다”고 화답했다.
평소에 눈물이 없다는 그도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절절한 감성에는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고. “초반에 아빠가 아이에게 뭔가를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에 이입해서 눈물이 났다. 찍으면서도 많이 울었는데 우리 영화는 따뜻한 눈물이어서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며 “요즘 많이 시끄럽고 아프고 화나지 않느냐. 우리 영화 보시는 시간만큼은 자극적이지 않고 마음이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힐링 드라마’로써 전해지기를 바랐다.
일본 원작과 얼마만큼 다른 작법을 구사하려 했는지 묻자 소지섭은 “극장에서 보신 분들에게는 우진이가 그렇게 돋보이진 않을 수도 있다. 수아와 지호(김지환)의 모습에서 큰 울림을 줄 것 같다”며 “나는 아내와 아이에서 뒤에서 힘을 실어주는 역할이다. 원작과 똑같이 따라하지 않으려 했다. 감독님께서 보는 사람들이 좀 더 유쾌하길 바랐고, 배우들이 먼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원작에서는 남편이 육상선수로 설정됐지만, 한국판에서는 수영선수로 설정이 바뀌었다. 학창시절 수영선수 생활을 하며 전국 체전 입상 경력이 있는 소지섭의 프로필을 따른 것이 아니냐는 궁금증이 생길 법하다. “나 때문에 바뀐 건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나도 10년 정도 수영선수를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선수생활이 끝났다고 했을 때는 펑펑 울었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를 찍으며 더 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지섭은 이번 영화를 통해 데뷔 이후 첫 ‘아빠연기’를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한다.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다. 머릿속에 아무리 그려봐도 아빠인 내 모습이 상상이 안 되더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생각이 정리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가면 오히려 민폐일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만의 멜로이기도 하고 따뜻한 영화를 하고 싶었다.”
“아이와 긴 시간을 들여 연기한 게 처음이었다. 이게 잘 담기면 아이의 신선한 감정이 잘 전달될 것 같았다. 지호 역의 지환이가 감정연기를 할 때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지만 그 신을 잘 찍고서는 날아다니더라. 이 영화에서는 힘든 것도 ‘좋은 힘듦’이었던 것 같다. 지환이가 현장에서 나를 ‘아빠’라 불렀는데, 멀리서 뛰어오면서 안길 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이들은 에너자이저인 것 같다. 절대 멈춤이 없었다.(웃음)”
손예진과는 2001년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남매연기를 한 이후 두 번째 호흡이다. 어느덧 17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났다. “진짜 오래간만에 만났다. 이제야 만났다. 서로 잘 버틴 것 같다. 예진씨도 너무나 좋은 배우가 돼 있었는데, 이번에 또 한 번 작업해 보니 한국에서 ‘멜로퀸’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더라. 너무나 좋은 기운을 주고 자기가 어떻게 담겨야할지 아는 배우다. 만족할 때까지 촬영을 이어가던데 완성본을 보니까 왜 그랬는지 알겠더라. 완벽주의자이면서도 ‘힘든 게 있으면 나에게 얘기해 달라’고 말하며 소통도 중요시했다.(웃음)”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소지섭과 손예진의 멜로 케미 외에도 다양한 출연진의 맛깔 나는 코믹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고창석이 소지섭의 동갑내기 친구 홍구로 등장해 연애코치를 해주며 지원군 역할을 한다. “내가 출연을 추천했다. 정말 친구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등장인물이 많지 않다보니까 그 속에서 유쾌함을 줄 배우를 생각했다. 감독님께 제안하니 너무 좋아하시더라. 고창석 씨도 시나리오를 받고 흔쾌히 하신다고 해주셨다. ‘영화는 영화다’ 때 처음하고 오랜만에 뵀는데 친구로 나온다고 하니 좋아하시더라.”
수아와 우진의 아들 지호가 자라, 훗날 박서준의 모습으로 깜짝 등장하는 신에서 많은 관객들의 놀라움이 짐작 간다. 심지어 박서준은 중년의 우진으로 등장하는 소지섭에게 “아빠”라고 불러 웃음을 자아낸다. “나는 그래도 연기하기 편했다. 계속 촬영을 해오며 아이에 대한 여운이 남아있어서 성인 역으로 누가 와도 그런 감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서준 씨가 ‘아빠’라 부르기 어색할 수 있었겠다.(웃음)”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입봉 하는 이장훈 감독은 어떤 디렉팅 스타일로 소지섭과 손예진을 진두지휘했을까. 제작보고회 당시 압도적인 재치와 입담으로 기자들의 시선을 한 번에 강탈했던 감독이다. “최근 인터뷰를 하면서 엉뚱함을 처음 느꼈다. 현장에서 섬세하시고 기운이 좋아서 촬영이 안 끝났으면 했다. 계속 촬영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근데 그게 작품을 할 때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얼굴 붉히며 촬영한 적이 없었다. 본인이 쓴 시나리오여서 설명도 잘 해주셨다. 아빠 역할을 연기하면서 감독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감독님이 아이랑 너무 친하고 와이프와도 관계가 좋으셔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 감독님은 실제로 아이에게 너무 잘 하신다. 아이의 눈높이를 아시는 것 같았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