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남북 정상회담이 2000년 1차, 2007년 2차 정상회담과 다른 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 정세 핵심인 ‘비핵화’에 집중된 회담이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과거에는 남북관계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은 남북 간 협력방안, 통일문제를 큰 틀에서 다뤘고 2007년 10·4 선언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등에 치중했다. 물론 비핵화도 다뤘지만 주로 6자회담 구도에서 다루기로 했다.
남북 회담 직후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것도 큰 차이점이다. 1차 회담 직후인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평양에서 김정일 전 위원장과 만나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11월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승리하며 성사되지 못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정상회담 원로자문단장)은 저서 ‘피스메이커’에서 “북한이 조명록 특사를 좀 더 일찍 미국에 파견(9월 방미)해 미 대선 전에 북미 정상회담을 열었어야 한다”며 “타이밍을 잘 못 잡은 북한의 명백한 실책으로, 만약 그랬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적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반에 회담이 열리는 것도 다른 점이다. 1차는 김대중 전 대통령 중반 때, 2차는 노무현 전 대통령 말에 이뤄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각국 정상이 논의에 나섰고 남한의 정권 초인데다, 약 50년간 북한을 통치해야 해 개혁·개방을 선택할 개연성이 높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담에 나오는 것은 이번 정상회담의 긍정적인 요소”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2차 정상회담 때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150명의 특별수행원이 방북했고 1차 때도 130명이 평양을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정부 관계자만 참석해 단출해질 전망이다. 축하행사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과 2007년에는 평양에서 성대한 환영행사가 있었고 노 전 대통령은 평양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도 했다. 또 양 정상이 첫 대면하는 장면이 생중계되거나 합의 내용을 공동 발표하면 처음 있는 일이 된다.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가 동행하면 역시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의 첫 부부동반 참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