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강도 높은 고금리 제한 정책을 펼치면서 저(低)신용 서민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더 팍팍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금리를 낮춰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정책 방향은 옳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제2금융권의 대출 영업까지 제한해 일부 서민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른바 금리규제의 역설이다.
당장 저축은행들이 300만원 이하 소액신용대출을 줄이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79개 저축은행의 지난해 소액신용대출 취급액은 총 9,10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6년 1조591억원보다 14%가량 빠진 금액이다. 국내 저축은행의 소액신용대출은 지난 2015년 1조1,092억원을 기록한 후 매년 내리막을 타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당국이 고금리 대출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소액신용대출 위주로 취급액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중도 사임한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퇴임 하루 전 저축은행 대표들을 긴급 소집해 “저축은행의 가계신용대출 금리가 연 20%를 넘는다면 저축은행의 존재 이유와 양립할 수 없다”고 저축은행 업계를 거세게 압박하기도 했다. 법정 최고금리는 24%이지만 저축은행들이 ‘자발적으로’ 금리를 낮춰 대출을 내주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 전 원장은 고금리 대출을 많이 취급한 저축은행은 주기적으로 명단을 외부에 공개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을 사채업자 다루듯 하면서 금리를 깎으라고 윽박지르는 게 지금 금융 당국이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며 “결국 손해를 보면서 영업을 하든지 상대적 고신용자 위주로 영업을 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오는 7월부터는 제2금융권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된다. 정부는 서민 실수요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300만원 이하 소액신용대출은 DSR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지만 전반적으로 대출 심사가 깐깐해질 것으로 예상돼 저신용 서민들의 대출 창구가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의 수난을 바라보는 카드사와 캐피털 업계도 수심이 가득하다. 특히 저축은행에 이은 다음 타깃은 카드사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현금서비스·카드론 등 카드 대출의 이자를 더욱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 대출 이용금액은 98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0.5% 늘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카드 대출 규모가 지난 몇 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대출 억제책이 상당한 효과를 본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카드론 금리가 높은 것은 그만큼 대출금을 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현재 14% 안팎인 카드론 금리를 더 내리라고 요구할 경우 전체 대출 규모를 줄이는 등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리 인하에 따라 대출 공급이 축소되면 결과적으로 수요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당국은 금융회사들이 지속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도 해야 하는데 지금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만 쏟아내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나서 금리를 흔들면 소비자들은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를 잃고 금융회사들은 매출이 줄어 모두가 손해를 입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