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이란 사회 현상을 지배하는 객관적 법칙을 해명하려는 경험과학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경험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연과학을 경험과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과연 경험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회과학은 현실에 기초를 둬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그 이론이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닌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에 그친다면 현실에서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을 개연성을 가지기 쉽다. 역시 사회과학의 한 부류인 경제학도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기존의 이론들을 경험 자료로 검증하는 데 더 무게중심을 둔다. 아무리 그럴듯하고 빈틈이 없어 보이는 경제이론이더라도 여러 연구자의 다각적인 경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순간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연구자의 가벼운 상상을 담은 소설이 된다. 더구나 기존의 경제이론에 반대되는 새로운 경제이론이 나타나면 많은 연구자가 흥미를 가지고 바라보며 다양한 방법으로 그 이론의 강건성을 테스트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한 체계적인 검증을 거쳐야 비로소 이론이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새로운 이론과 마주하고 있다. 기존의 공급주도 성장의 출발점이 기업과 산업이라면 소득주도 성장의 출발점은 가계와 소득이다.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면 시장이 커지고 이것이 기업의 이익으로 가면서 그동안 경제학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분배와 성장이 같이 갈 수 있다는 이론이다. 기존의 공급주도 성장전략이 한계에 다다른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성장전략이 필요한 것도 분명하다. 지금까지 그 대안으로 소득주도 성장이 유력해 보이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그 소득주도 성장의 프레임에서 많은 경제정책이 시장에 주입된 지 어느덧 1년이다. 그러나 가계소득 격차가 역대 최악으로 벌어졌고 고용시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경기 상황은 정부 내에서도 침체 국면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부 보수 언론들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이 사기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일이 이 정도까지 왔으면 현 경제팀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자세를 보여주고 열심히 더 일을 해 최대한 빨리 스스로를 증명해내든가 이론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최대한 빨리 방향 전환을 하든가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소득주도 성장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없을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것이기 때문에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시장에서는 그 말을 변명으로 듣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시장의 신뢰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급주도이건 소득주도이건 어떠한 훌륭한 경제정책도 시장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개인적으로는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해 성장과 분배가 같이 가는 큰 그림이 구현됐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 사회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더 발전할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인 소득주도 성장의 프레임이 한국 경제에 위치한 지 1년이 지났다. 현재까지 나타난 결과는 참담하다. 그 이유가 물과 기름의 관계와 같은 분배와 성장을 억지로 연결하려는 소득주도 성장이론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현 경제팀이 이론을 구현할 능력이 없는 것인지는 필자도 모르겠다. 물론 1년이라는 시간이 짧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 이론의 성공 여부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성급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성장과 분배 지표가 더 악화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았겠는가. 정부의 입장에서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부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혜안을 가지고 이 난관을 잘 헤쳐나가기 바란다. 끝으로 부언하면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그리고 학교와 시장은 더 다르다.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인데 자신의 생각대로 시장이 움직일 것이라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