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 속옷 사고 연금에 가입하세요.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 노후를 준비할 때입니다.”
자산운용사 대표와의 인터뷰는 으레 최근의 투자 동향, 유망 투자처 등에 대한 얘기가 오갈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를 해간다. 하지만 조홍래(사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과의 인터뷰는 예상을 모두 깨버렸다. 그는 양해를 구한 후 사무실 한쪽에 길게 자리 잡은 화이트보드 앞으로 갔다. 강의 주제는 ‘노후준비’였다. 기자가 아닌 직장인으로서 노후준비를 위해 이것만은 알았으면 한다는 게 조 사장의 바람이다. 은퇴 후 자산관리 등의 고민이 담긴 그래프 등을 보여주며 강의를 들었다. 자산운용 업계에서 조 사장을 두고 왜 ‘퇴직연금 전도사’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됐다.
조 사장은 한국이 곧 ‘노인의 나라’에 접어든다고 강조한다. 그는 “가난한 노인의 나라를 만들 것인지, 부유한 노인의 나라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사장의 고민은 은퇴 이후 소득절벽 상황에서 어떻게 소득대체율을 높이느냐는 것이다. 그가 퇴직연금 설파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다.
최근 한투운용의 타깃데이트펀드(TDF) 시리즈가 설정액 2,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3월2일 출시한 후 1년3개월 만이다. 한국투자TDF알아서펀드 시리즈는 출시 두 달 만인 지난해 4월 설정액 500억원을 돌파한 후 같은 해 11월 설정액 1,000억원, 출시 1년3개월 만인 지난주에 설정액 2,000억원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TDF 상품 중 가장 빠른 기록이다. ‘고령화, 이른 퇴직, 그리고 그 후 소득절벽’.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거쳐야 하는 우울한 통과의례에서 조 대표가 가진 TDF에 대한 믿음은 거의 신념에 가까웠다. 그는 “‘생애주기펀드’라고도 불리는 TDF는 은퇴 시기에 맞춰 연령대별로 투자자산을 자동 배분해주는 상품”이라며 “이 상품은 목표 은퇴 시기에 해당하는 펀드에 가입하도록 돼 있어 대표적인 노후대비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TDF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지난 1993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TDF는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해 현재는 미국 퇴직연금(401K)의 65% 정도를 차지한다. 운용 업계에서는 TDF를 은퇴를 준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상품이라고 보고 있다.
조 사장은 TDF 상품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깊다. 부사장 시절인 2015년 1월 한국 투자자에게 적합한 TDF 구조를 설계하기 위해 장기투자상품 전문 운용팀인 ‘투자솔루션본부’를 신설했다. 이듬해 10월에는 퇴직연금 전담부서를 신설하며 상품 준비에 착수했다. 현재 돌풍을 일으킨 TDF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상품을 들여온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노후 상황에 맞게 설계된 상품이다. 조 사장은 “TDF를 음식으로 치면 달걀·우유·두부와 같은 ‘완전식품’”이라며 “완전식품은 작은 달걀 한 알이라도 필수영양소를 골고루 갖췄듯이 한국형 TDF 안에는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경우의 수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규모는 지난해 말로 168조4,000억원, 이 중 88%가 원리금 보장상품, 즉 은행과 상품보험사의 예적금 상품이다. 퇴직연금 수익률 성적표도 매번 낙제점에 머문다. 지난해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1.88%)은 전국 소비자물가상승률(1.9%)에도 못 미친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노후준비라는 게 은행에 있는 약간의 예금 정도인 셈이다. 저금리 시대에 2%도 되지 않는 예금금리로는 노후라는 높은 파고를 넘을 수 없다. 조 사장은 우울한 노년이 되지 않는 ‘똘똘한 상품이 TDF’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보다 베이비붐 세대가 10년 빠른 미국도 노후에 대한 해답을 일정 부분 TDF로 수렴해가고 있다.
조 사장은 “모두가 춥고 배고픈 노년이 온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지만 어떤 적극적인 준비도 하지 않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며 “노후준비는 내일보다는 오늘, 그리고 지금 당장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2%도 안 되는 수익률로는 노년의 처절함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5% 정도의 복리상품인 TDF를 권한다”며 “1년을 비교하면 2%와 5%지만 이게 20~30년 쌓이면 그 차이는 두 배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조 사장이 TDF를 완전식품에 비유한 것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따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TDF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위험을 다 계산하려고 한다”면서 “투자국도 30개국, 거기에 담는 상품 역시 180여종에 달한다. 주식 상승기, 주식 하락기, 금리 상승기, 경기침체기 등 모든 위험에서 고객의 노후를 최선으로 지키려는 상품이 바로 TDF”라고 말했다. 조 사장은 수익률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끔 TDF 상품의 수익률을 일렬로 세운 ‘경마주의식’ 보도를 보면 안타깝다”며 “TDF는 최소 몇십년의 장기상품인데 이런 수익률 기사는 무의미하다”고 덧붙였다. 조 사장에게 TDF는 ‘높은’ 수익률이 매력적인 상품이 아닌 현재와 미래의 리스크를 고려해 ‘좋은 수익률’을 내는 상품이다.
조 사장은 기업들의 퇴직금 관리가 엉터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 가정의 가장인 퇴직 직원은 소득절벽을 맞이하고 있는데 기업들의 퇴직연금 관리는 안일하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퇴직연금 관리의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워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퇴직연금은 운용 방식에 따라 퇴직금 운용을 회사가 책임지는 확정급여형(DB형), 근로자가 책임지는 확정기여형(DC형)으로 나뉜다. 현재는 절반 이상이 DB형이다. 조 사장은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기업이 영세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DB형 퇴직연금을 은행·보험사 등에 맡기는데 성적표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요 은행들의 1·4분기 기준 3년 DB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전년보다 0.41%포인트 내려간 1.53%에 그치고 있다. 은행 예금 이자보다 못한 셈이다. 조 사장은 “직원들이 똑똑해져야 한다”며 “운용사에 맡기거나 TDF 가입 등 선택은 직원들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최근 들어 ‘금융IQ’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사를 제외한 직장인들의 금융IQ가 미국·일본뿐 아니라 중국보다 낮다”며 “자신의 퇴직연금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관리하는 기업도 안일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시각이 오후5시쯤이었다. 조 사장은 “오후5시가 지나면 곧 어두워질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지금 당장 자신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챙기고 부족하다며 회사에 건의하고 또 계획을 짜야 한다. 노후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다. 스스로 나서야 하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퇴직연금은 ‘시간’을 사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이호재기자
●조홍래 사장은 △1961년 서울 △1983년 서울대 경영학과 △1984년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사 △1991년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1992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2002년 동원증권 리서치본부장 △2005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전무) △2006년 한국투자증권 홀세일본부장(겸직) △2007년 한국투자증권 법인본부장(겸직) △2008년 한국투자금융지주 글로벌리서치실장(전무) △2011년 한국투자금융지주 경영관리2실장·상근감사위원(겸직) △2015년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부사장 △2017년~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