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에 간다”는 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1970∼1980년대에는 미술 도구와 재료를 사러 가거나 입시미술 학원에 간다는 의미였고, 또 즉석 떡볶이와 파르페를 먹으러 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때는 ‘청기와주유소’와 ‘산울림 소극장’ 등이 홍대 앞을 상징하는 지정학적 키워드였다.
1990∼2000년대에는 클럽에 간다는 의미로 통했다. 강남에 몰려있던 기존의 ‘나이트클럽’과 달리 인디밴드와 록밴드의 라이브공연이 펼쳐지고 춤과 술을 즐길 수 있는 클럽들이 생겨나 홍대 앞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
지하철 6호선과 공항철도, 경의중앙선이 개통하면서 2010년대에 외국인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모여들자 홍대 앞은 상업화가 가속됐고 젠트리피케이션, 투어리즘 포비아가 확산됐다.
시대에 따라 홍대앞 일대는 새로운 계층과 부류가 유입되면서 지역의 성격을 변화시켜왔다. 주거지에서 독립문화 공간,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 대규모 자본으로 무장한 상업공간까지 끊임없이 ‘홍대 문화’가 유지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런 홍대 앞 변천사를 담은 ‘2017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홍대앞 서울의 문화발전소’를 발간했다고 5일 밝혔다.
홍대 앞은 당인리 화력발전소로 무연탄을 운반하는 당인선 철길을 따라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지역이다. 해방 이후 시행된 서교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주거지가 조성됐으며 당시에는 중산층 이상이 사는 고급주거지로 인기를 끌었다.
1955년 홍익대학교의 이전으로 이 일대는 대학가를 이뤘다. 홍익대 미술대학이 주목받으면서 1970년대부터 미술문화의 중심지가 됐고 거리에는 예술적 분위기가 넘쳐났다.
1990년 이후 ‘클럽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홍대 앞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1992년 문을 연 ‘스카’(SKA)는 록카페형 댄스클럽의 시초이며 2001년부터 개최된 ‘클럽데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관광상품화 됐다.
‘홍대앞 서울의 문화발전소’는 ‘클럽데이’ 진행과정과 당시 사진, 포스터 등을 수록했다. 또 호미화방, 리치몬드과자점, 산울림소극장 대표 등 홍대 앞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온 12명을 선정해 생애사 구술조사를 진행한 내용도 담았다. 이 책은 서울책방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