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타하리’, ‘서편제’ 등에서 폭발적인 가창력과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대극장을 휘젓고 다니는 실력파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 ‘에스메랄다’로 돌아왔다.
차지연은 한국어 버전 10주년 기념 공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원초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집시 여인으로 분한다. 맨발로 춤을 추는 20살 남짓의 이 여인은 가톨릭 신부 ’프롤로‘, 파리 근위대장 ’페뷔스‘, 꼽추 종지기 ’콰지모도‘ 모두를 사로잡는 인물.
무엇보다 차지연은 10년 만에, 꿈의 뮤지컬과 함께하게 됐다는 점에서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10년 전에도 이 작품 오디션을 봤으나 떨어졌어요. 당시엔 떨어진 사실만 아쉬웠지 왜 떨어졌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10년 전에 캐스팅됐다면 이런 ’에스메랄다‘의 매력을 표현하지 못 했을 것 같아요. 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더 늦기 전에 의미 있게 참여하라고 10주년에 절 불러 주신 것 같아요. ”
30대 중반의 차지연은 20살 남짓의 ‘에스메랄다’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지금 제 나이와 20살가량 신체적인 나이가 차이 난다는 점은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차지연이 온 몸으로 이해한 ‘에스메랄다’는 일반적인 섹시한 여인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순수한 내면이 더 돋보이는 ‘맑은 섹시함’을 지닌 여인이었다.
”예전에는 에스메랄다를 섹시하고 관능적인 캐릭터로만 봤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빨간 입술에 검은 망사 스타킹을 신은 것 같은 섹시함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에스메랄다는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를 사랑하고, 춤추는 게 행복한 사람이죠. 모두가 평화로웠으면 하는 마음, 불의에 대한 용기는 물론 정의로움도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되는 게 많죠.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는 순수함 또한 빼 놓을 없어요. 이런 점들이 어우러져서 맑고 묘한 섹시함을 풍긴다고 생각해요. 인물의 원래 나이보단 많지만 깊은 감성으로 승부수를 던져보겠습니다.“
차지연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넘버는 ‘아베마리아’ 이다. 에스메랄다 마음이 온전히 담겨 있는 곡이기도 하다.
“관객으로 공연을 볼 때는, 이 넘버를 들으면서 그냥 배우가 노래하는 건 줄 알았어요. 에스메랄다의 마음으로 들으니 그게 아니었어요. 수 많은 상황을 거친 뒤, 거대한 성당 안에서 정확하게 신을 1대1로 온전히 대면해서 부르는 노래였어요. 그래서 내 입에서 ’아베 마리아‘란 단어가 나올 땐 경이로움에 가득차서 부르게 돼요. 그래서 낯설게 서툴게 다가갔어요. 에스메랄다가 점점 더 기도를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해요. 세상에 대해 기도하게 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에 대해 기도를 하게 돼요. 이 여인을 대변해주는 곡이라 말할 수 있어요.”
’노트르담 드 파리‘는 송스루 뮤지컬(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이루어진 뮤지컬). 주역 배우들의 가창력이 관건인 작품이다. 정작 당사자는 “이번 여주인공 세 명(윤공주, 유지, 차지연) 중노래는 제가 제일 못할 겁니다.“고 고백했다.
그는 “윤공주 씨는 이미 여러 차례 ‘노트르담 드 파리’를 하신 유명하고 훌륭한 에스메랄다이고, 유지 씨는 신인이지만 노래를 너무 잘한다”고 칭찬했다.
차지연은 “관객들이 차지연이 노래를 제일 못 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예의를 갖추기 위한 겸손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이번 ‘노트르담 그 파리’를 성공적으로 소화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부분이기도 하다. 하나 하나 넘버들이 노래로 들리지 않고 인물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로 들리기를 원하는 것.
“저는 말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되게 강한 사람이에요. 저는 제가 출연하는 장면에서 에스메랄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어요. ‘에스메랄다’란 인물이 이 작품 안에서 가지는 의미,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보여주고 싶어요. 같은 선율이라도 저는 문장, 말로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커요. 물론 전 제 노래에 늘 만족하지 못해요. 망언이 아닙니다.”
화기애애 하게 이어지던 인터뷰에서, 그가 “노래를 너무 못하는 가수”라고 고백하자, 취재진들의 눈이 커졌다.
”스스로 잘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한다“고 한 차지연은 ”그게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인 것 같다“고 자평하기도.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밀어붙이는 편이에요. 그렇다 보니까 제 스스로를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세상엔 노래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세요. 저희 연습실만 봐도 정말 귀가 호강하는 곳이죠.“
“노래도 중요하지만, 잔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 노래가 객석에 말하는 것처럼 들리길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공연이 끝났을 때 ’차지연 노래 잘하더라‘란 말 보단, ’이 작품 정말 좋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감동일 것 같아요.”
그는 마지막으로 “내가 그동안 관객으로 느꼈던 열기와 감동, 또 이 수많은 감정들을 관객들께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의 생명력과 소중함을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각오였다. 집시여인을 꿈꾸던 소녀에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 돌아온 차지연. 그는 ‘감사함을 잃지 않는 배우’는 물론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해 늘 노력한다고 했다.
“12년 동안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그 어떤 작품도 소중하지 않은 작품이 없었고, 모든 무대가 감사했어요. ‘이 정도만 해도 괜찮아’란 건 없어요. 작품을 그렇게 대했다간, 관객들이 바로 알아차려요. 생명력이 없는, 영혼이 없는 배우로 퇴보하는 지름길이죠. 배우가 계속 뭔가를 만들어가고 감사함으로 작품에 임하지 않으면 무대는 생명력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해요. 무대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좋아하는 무대의 감사함을 절대 읽고 싶지 않아요. 엄마로서 목표는 딸이 나중에 커서 ‘우리 엄마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라고 쿨하고 인정해주는 거죠. 목표는 그것 하나 밖에 없어요. 더 이상의 욕심은 사치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 엄마로서 계속 채찍질하면서 정신 차리겠습니다.”
한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오는 8월 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