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親기업정책, 이념의 문제 아니다]"친기업은 지지층 배신" "정책 전환해야"...당청 노선갈등 불거져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 고집하다

일자리 통계자료 왜곡 논란 자초

靑 수석 교체에도 정책전환 미지수

여당서도 규제개혁에 나서지만

일부 반발로 은산분리 완화 등 발목

장하성(왼쪽)정책실장과 조국(오른쪽) 민정수석이 청와대 여민관을 걸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에 포진한 시민단체 출신 참모들의 입김이 세지고 이념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정책 수립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연합뉴스장하성(왼쪽)정책실장과 조국(오른쪽) 민정수석이 청와대 여민관을 걸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에 포진한 시민단체 출신 참모들의 입김이 세지고 이념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정책 수립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016년 20대 총선 직후 열린 당선자 대상 강연에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이 자연스레 ‘친기업’을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수권정당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민주당이 ‘기업과 경제를 옥죄는 정당’이라는 당시 여당과 언론의 비판에서 벗어나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을 터부시해온 잘못된 습성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러 민주당은 시민들의 촛불혁명을 등에 업고 집권여당이 됐지만 과연 지금의 청와대와 여당은 자신 있게 ‘친기업’을 말할 수 있는지 여전히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해묵은 이념논쟁의 프레임에 빠져 내부갈등을 자초하며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다. 좌파 진영에 속하는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는 경제 정책 수립과 집행에 있어 균형감각을 중시한다. 그는 “심장은 왼쪽에 두지만 오른쪽에는 지갑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함께 중시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먼저 국정운영의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는 정책 이념과 정책 현실 사이의 내부갈등으로 혼란을 자초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청와대 참모진 구성을 두고 외부에서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참여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 출신들이 요직에 포진하다 보니 국정운영 방향이나 정책도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만 해도 비서관급 참모진 63명 중 10%에 달하는 6명이 시민단체 출신이었다. 정책을 총괄하는 장하성 실장, 사법개혁을 책임지는 조국 민정수석, ‘왕수석’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실세로 꼽히는 김수현 사회수석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경제·기업·노동 정책 등에서 좌(左)편향된 시각에 매몰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딘 규제혁신에 대해 “답답하다”고 토로하고 있고 현실감각이 뛰어난 경제관료들이 기업이나 노동 정책 수정을 언급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인 이유다. 이번 청와대 개편에서 물러난 홍장표 경제수석과 반장식 일자리수석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고집하다 결국 일자리 통계자료 왜곡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실제 청와대에 파견된 관료 출신 중 일부는 ‘이제는 정책에 대한 시각교정이 필요한 때’라며 유화적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강경파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 정책이 ‘이념투쟁’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쏟아지고 여기저기에서 부작용이 양산되는 것이다. 청와대가 최근 홍 수석과 반 수석을 경질한 것은 이념을 내세운 정책에 ‘레드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강경파의 일방통행식 정책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온건파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10일 인도 국빈방문 중 양국 기업인들을 만나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같은 문 대통령의 기업관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집행될지에 쏠린다. 자칫 친노조 성향의 참모들이 문 대통령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보고를 하고 문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당 역시 문 대통령이 미진한 규제개혁을 질타하자 부랴부랴 국회 차원의 후속조치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당장 내부조율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규제개혁과제로 꼽히는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를 두고도 원내지도부가 최근 규제 완화를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시민단체 출신의 당내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인터넷은행은 금융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는 ‘메기’ 역할을 하기 위해 국내에 도입됐다. 하지만 여당 내 일부 의원들이 ‘은산분리 완화=기득권 특혜’라는 시민단체들의 반대논리를 그대로 대변하면서 규제를 풀어 인터넷은행을 활성화하겠다는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아직도 잠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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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내부 이념논쟁에 휘말려 엇박자를 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법안 처리를 놓고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3당 간사가 서로 한발씩 양보한 절충안에 합의했지만 여당 내 일부 강경파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정기국회 처리가 불발됐다. 당시 여당 내 강경파들은 지도부가 앞장서서 기업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에 대해 최운열 의원은 “정치는 아무리 이상이 좋더라도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이념적 사고에 사로잡혀 기업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것을 두고 기업만 대변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상·박효정기자 kim0123@sedaily.com

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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