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조직에서 상사가 시키는 일을 하는 건 당연하다.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싫으면 떠나면 된다. 인연에 얽매이지 않는 곳으로...”
상사의 과도한 실적 압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지는 국민은행 직원 A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다. A씨는 배우자와 두 자녀를 둔 50대 가장이다. 이후 은행 측과 노조는 2주간 공동조사를 벌였지만 판단은 달랐다. 은행 측은 “직접적인 가해 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책임자 징계와 은행 차원의 공식 사과를 거부했다.
이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이하 KB노조)는 실적 압박에 국민은행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관련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KB노조는 18일 오전 10시30분께 서울 영등포구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월 26일 서울의 한 지역영업그룹 ‘스타팀’ 소속 직원 A씨가 실적 압박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이어 노조는 “해당 지역영업그룹 B 대표를 즉시 해임하고 아웃바운드사업본부의 책임자를 경질해야 한다”며 “두 책임자가 유가족과 노조에 공식 사과하고 스타팀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한다”을 주장했다.
A씨는 올해 초 ‘스타팀’에 배치된 뒤 실적 압박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타팀은 지난해 11월 허인 KB국민은행장이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올해 1월 국민은행에 신설한 조직이다. 이 팀은 그간 KB국민은행이 부진하다고 판단했던 우량 법인에 대한 아웃바운드 영업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노조는 사측이 신생 팀에 과도한 실적 압박을 가했다고 보고 있다. 노조는 “사측은 회장·사장에게 보고해야 한다며 각 팀에 실적 쪽지를 보냈다”며 “해당 쪽지에는 팀의 실적이 아닌 개인별 실적을 구분해서 표기해 과도한 실적 경쟁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우량 법인에 전화한 횟수와 섭외 건수를 일일이 기록하고 예상 실적 일수까지 보고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보통 신생팀에 한해 1~2년 동안 실적 평가를 유예해줬으나 스타팀은 예외였던 셈이다.
당시 A씨는 주변 동료 직원에게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일요일 저녁 근무 중 동료에게 연락해 “대표님께 못한다고 얘기할까?”라며 부서 이동을 희망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개인 메모장을 통해 “대표님 저 승진 욕심 버렸습니다. 제가 못 미친다고 판단되시면 저를 교체해 주십시오”라며 부서 이동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노조는 B 대표가 A씨에게 과도한 업무 지시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B 대표는 A씨에게 고유 업무 외 △명절 영업점 창구 지원 △관할 영업점 우수직원 초청행사 참석 △스터디그룹 운영 및 강의 등을 지시했다.
노조는 “향후 노동조합은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전 조합원을 대신해 ‘책임자 처벌 및 제도개선을 위한 조치’가 완결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