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아카데미상 후보작 발표를 기다리던 할리우드 영화계에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해 개봉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가 사상 최초로 극영화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일반 영화 중심의 패러다임에 익숙했던 당시에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아쉽게도 ‘양들의 침묵’과 맞붙어 최우수 작품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받았고 이후 픽사의 ‘토이스토리3’가 작품상을 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아카데미상이 다양한 영화 장르를 반영해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을 신설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였다.
아카데미상은 루이스 메이어 MGM 사장이 뛰어난 영화와 영화인을 격려하자며 제안해 만들어졌다. 1929년 1회 시상식만 해도 루스벨트호텔에 270명이 모여 초라하게 출발했다. 수상 부문은 11개에 머물렀고 작품상 후보작도 5편에 불과했다. 하지만 83회째인 2011년에는 시상식 장소가 할리우드 코닥극장으로 바뀌고 수상작도 25개 부문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 세계 영화인의 축제로 발돋움했다. 지난해에는 영화 제작자가 아닌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다. 할리우드가 자존심을 꺾고 동영상 전송 서비스 사업자의 존재를 비로소 인정한 셈이다.
아카데미상 심사위원들은 처음에 20명 정도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5,000여명으로 늘어났다. 매년 시상식 즈음에는 심사위원을 겨냥한 영화 제작사의 홍보전이 선거 캠페인을 방불케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심사위원의 구성을 살펴보면 백인이 94%, 남성이 77%에 이르고 이 중 60세 이상의 노년층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백인 남성 위주의 집안 잔치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최근에는 주최 측에서 신규 회원 중 소수인종의 비율을 4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등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편파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예의 트로피는 원래 청동으로 만들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 금속이 부족해 석고로 제작한 데 이어 지금은 주석과 구리·안티몬 합금으로 바뀌었다.
아카데미상 위원회가 내년부터 ‘인기영화상’ 부문을 신설하고 시상식 시간도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최근 시청률이 급락하는 등 대중의 호응이 예전 같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콧대 높은 아카데미상이 또 어떤 변신으로 세계 영화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