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이명박(MB)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을 때다. 뉴욕 소재 한미 우호증진 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 초청 연설에서 MB의 폭탄 발언이 나왔다. MB는 연설에서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적 지원을 하는 일괄 타결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MB의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구상이 처음으로 공개된 순간이었다. 파장은 컸다. 청와대는 양국이 공유한 내용이라고 설명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차가웠다. 미 국무부는 논평을 통해 “그랜드 바겐은 이 대통령의 발언이자 정책”이라고 깎아내렸다. 무르익지 않았는데도 불쑥 내던졌던 것이다. 빅딜구상이 실현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는 대통령이면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초청 행사에 빠짐없이 나선다. 문재인 대통령도 유엔총회 참석에 앞서 ‘위대한 동맹으로 평화를’을 주제로 연설했다. 이 단체가 부각되는 것은 다자외교무대 1번지인 뉴욕의 유일한 비공식 외교채널이자 한미 소통창구라는 특성에 있다. 비영리 민간단체여서 흔히 말하는 북한의 ‘뉴욕 채널(유엔주재 북한 대사관)’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이 단체는 한국전쟁 때 미 8군 사령관을 맡았던 제임스 밴 플리트 대장을 빼고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가 퇴역 후 우리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57년 미국 내 친한 인사를 규합해 설립했다. 원래 한미소사이어티로 출발했다가 1993년 워싱턴의 한미재단을 흡수 통합했다. 이를 계기로 지한파 인사의 사랑방 수준에 머물다 지금과 같은 민간 외교채널로 일취월장했다.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역대 대통령이 초청 행사에서 연설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밴 플리트상인데 한미 양국의 전직 대통령과 국내 대기업 총수 등이 수상했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일본이 1907년 설립한 재팬소사이어티를 벤치마킹했다. 미국의 통상전쟁을 지휘하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이 단체의 회장 출신이다. 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대통령 당선자 신분인 도널드 트럼프를 뉴욕에서 회동하는데 산파 역할을 했다. 부럽지만 민간의 공공 외교역사가 일천한 우리와 일본을 단순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일본이 그의 덕을 보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래도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아야 성과를 낼 것임은 분명하다. /권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