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 다니는 승용차가 어느덧 출고한 지 13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출퇴근용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탓에 누적 주행거리는 15만㎞ 남짓. 그런데 차량 상태는 여전히 좋은 편입니다. 소모성 부품을 교체한 것을 제외하고는 큰 수리비용이 든 것도 없습니다. 이 상태라면 15년 정도도 거뜬히 넘길 것 같군요.
뜬금없이 차 얘기를 꺼낸 것은 재건축이나 리모델링과 비교하기 위해서입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도 너끈히 견뎌내는 15년이란 기간은 아파트의 증축형 리모델링 가능 연한과 같습니다. 30년이면 아예 기존 아파트를 완전히 철거하는 재건축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하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도 15년을 너끈히 탈 수 있는데 집의 수명이 기껏 30년이라니요.
현재 재건축을 추진 중이거나 최근 재건축이 이뤄진 노후 아파트를 보면 단명하는 이유가 비슷합니다. 당장 구조에 문제가 생겨서 무너질 수도 있는 긴급한 안전상의 이유는 오히려 이례적입니다. 건설 당시 제대로 세척하지 않은 바닷모래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됐던 1기신도시 아파트들도 구조 자체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배관, 배선, 단열 등에 문제가 생기거나 주차장이 협소해 생활에 불편을 겪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아파트는 배관 배선 등을 교체하려면 바닥이나 벽체를 아예 뜯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아파트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주된 이유는 처음부터 소모품 노후에 따른 성능 개선이 어렵게 지어졌기 때문인 셈입니다.
유럽의 주택들을 보면 우리 주택 구조와 확연히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배관·배선이 외벽이나 주택 내부에 노출돼 있다는 점입니다. 낡더라도 손쉽게 이를 보수하거나 교체할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물론 우리 주거문화는 온돌 난방 방식을 사용하는 채택하고 있는 탓에 직접 비교 대상으로 삼기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바닥에 온돌배관을 직접 매립하는 대신 난방 패널 등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주택의 조기 노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명 ‘백년주택’으로 불리는 장수명 주택 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수명 주택은 여전히 권고사항입니다. 인증을 통해 인센티브를 주는 정도죠. 장수명주택 인증을 받게 되면 건폐율과 용적률에 각각 15%의 인센티브를 주고 있긴 하지만 시공비가 기존 아파트보다 훨씬 높아지는 탓에 민간 건설업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만한 유인책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증축형 리모델링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평면 개선이 어려운데다 아예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과 비교해 별로 장점이 없다 보니 성공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건설사들도 당장 소비자의 눈에 들어오는 첨단 시스템 도입이나 화려한 고급 마감재, 조경 등에는 많은 신경을 쓰면서도 정작 주택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설계·시공에는 소극적입니다.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하고 재건축에 따른 과도한 시세차익을 환수하기 위한 초과이익 환수제 등으로 시장을 억제하면 당장은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지속적인 재건축 압력을 해소하지는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주택의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정부의 제도·기술적 지원과 건설업체들의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30~40년 만에 멀쩡한 구조물을 허물고 새 집을 짓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두환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