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이 사실상 2세 승계 작업을 완료했다. 호반건설과 ㈜호반의 합병이라는 묘수를 통해 김상열 회장의 장남 김대헌 부사장이 그룹 주력 계열사인 호반건설의 대주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인하우스 광고대행사인 비오토를 만든 후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해온 15년간의 장기 승계 플랜이 빛을 봤다는 분석이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최근 김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추가했다. 4일 호반건설과 호반의 합병 작업을 마무리해 김대헌 부사장이 호반건설의 지분 54.7%로 대주주가 됐음을 알리는 한편 김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등재함으로써 그룹의 적자임을 대내외에 공표했다. 김 회장도 호반건설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려 호반그룹의 중심은 호반건설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대외적으로 호반그룹의 중심은 호반건설(합병 전)로 알려졌다. 공시자료에도 지배기업으로 표기된다. 김 회장이 대주주(29.1%)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호반(호반건설주택)이 핵심이었다. 호반의 주주는 김 회장의 장남 김 부사장(85.7%)과 김 회장의 부인인 우현희씨(14.3%)였다. 호반은 2003년 시작돼 호반건설(1996년)과 업력도 7년 차이가 나지만 회사 규모(2017년 매출)는 호반이 2조6,158억원으로 호반건설(1조3,103억원)의 두 배에 이른다. 아들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가 아버지가 대주주로 있던 회사보다 덩치가 더 컸다. 시평 규모도 호반이 13위, 호반건설이 16위였다.
호반의 뿌리는 2003년 광고 회사 비오토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호반비오토로 상호를 바꿨고 2015년에 호반건설주택으로, 다시 올해 7월 말에는 호반으로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초창기에는 그룹 광고 물량으로 시작해 호반건설 등의 주택 시공과 시행사업을 도맡았다. 2012년 매출의 90%가량이 에이치비자산 등 관계사에서 나왔다.
호반은 2013년 호반씨엠과 에이치비자산관리를 흡수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워왔다. 호반은 2012년 연결 매출은 2,516억원으로 같은 해 호반건설이 거둔 매출 9,301억원의 3분의 1을 밑돌았다. 하지만 2015년에는 매출 1조2,194억원을 기록해 호반건설(1조1,593억원)을 제쳤다. 호반은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도 8곳으로 호반건설(3곳)보다 2배 이상 많다. 최근 인수한 리솜리조트 역시 호반 소속이다.
호반을 전략적으로 키워온 호반그룹은 호반건설 상장을 앞두고 호반과 호반건설 합병을 발표했다. 기업공개(IPO) 자문 증권사들은 호반과 호반건설이 따로 있는 것보다 합쳐 상장하면 10대 건설사에 진입할 수 있다는 명분을 찾았고 주주들은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는 김 회장 장남이 호반그룹의 중추를 지배하는 결과도 얻었다.
호반의 자산이나 매출이 호반건설보다 많다 보니 합병 비율도 호반건설 1주당 호반 5.88로 설정됐다. 기존에는 1대4.52이었지만 재평가를 통해 호반에 더 유리해졌다. 이를 통해 김 부사장은 호반건설 지분 하나도 없이 54.73%를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호반그룹 내부에서는 아직 김 회장의 나이가 57세로 젊고 승계를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2세 경영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완료했다. 호반건설은 장남이, 토목이나 사회간접자본(SOC)을 맡는 호반산업은 둘째 민성씨가, 주택 브랜드 베르디움은 막내딸 윤혜씨가 맡는 것으로 교통정리된 모습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년에 상장을 진행하게 되면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더욱 희석되면서 대헌씨의 2세 승계를 더 이상 문제 삼을 수 없는 구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