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성(46)은 노력형 골퍼이면서 천재형 골퍼이기도 하다.
지난 1990년대 안양CC(옛 안양베네스트)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가면서 골프를 배웠다. 1년 만에 계약직 직원이 됐는데 골프장 직원이면 골프를 잘 알아야 한다는 당시 부지배인의 지침에 따라 골프를 익혔다. 그는 “처음 골프채를 잡은 날이 1998년 1월8일이었다”고 똑똑히 기억했다. 그로부터 1년여 만인 1999년 4월에 세미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7월에 한국프로골프(KPGA) 2부 투어에 데뷔했다. 골프장 일을 계속하면서 대회가 있을 때는 월차 휴가를 내고 참가했다.
입문 1년여 만의 프로 데뷔라는 전설적인 스토리는 그야말로 피땀 눈물의 산물이다. 오전5시30분에 출근해 일하고 오후3시 퇴근 뒤부터 오후11시까지 연습장에서 살았다. 오후 근무일 때는 새벽부터 오후3시까지 연습 볼을 쳤다. 제대로 된 클럽을 살 돈이 없어 가장 오래된 헌 채들만 여기저기서 구해 겨우 구색을 갖췄고 레슨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골프 잡지를 보고 독학으로 익혔다. “어릴 때 다쳤던 손가락이 항상 문제였어요. 연습하다 보면 맨날 피가 질질 나서 테이프로 감기 바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도 한 번 빠져드니까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자려고 누워도 천장에 뱅뱅 돌 정도였으니….”
돌아보면 골프를 천직으로 삼기 위한 악착같은 몸부림이었다. 고3 때 사고로 오른손 엄지 끝이 잘려나가 4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은 최호성은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슈퍼마켓 배달부터 공사장, 광산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 ‘숙식 보장’에 이끌려 골프장에 취직했고 지금까지 흘러왔다. 최호성은 노력형이나 천재형이라는 수식도 좋지만 자신은 ‘운 좋은 사람’ 쪽에 가깝다고 했다. “젊어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한 덕분에 세상을 남보다 일찍 알게 됐고 골프장 측의 배려 덕에 프로골퍼의 길을 닦게 됐으니 썩 운이 좋았던 것 아닙니까.”
또 하나의 잘 풀린 운은 아내 황진아(38)씨를 만난 것이다. 둘은 2005년 말레이시아의 한 골프 리조트에서 처음 만났다. 최호성은 전지훈련 중이었고 황씨는 초보자 대상 골프 캠프 참가자였다. 마침 귀국 비행기도 같아 이후로도 연락을 이어갔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초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황씨는 남편이 국내에 머물 때는 매니저 역할까지 한다. 어릴 적 동네에서 실뱀장어를 잡아 내다 팔던 얘기부터 프로 데뷔전 첫 홀에서 긴장한 탓에 티에 볼조차 제대로 못 올리던 얘기까지 아마 수십, 수백 번은 들었을 내용인데도 황씨는 인터뷰 내내 흥미로운 듯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답변을 거들기도 했다. 골프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최호성이 선뜻 답을 찾지 못하자 아내가 나섰다. “이이는 정말 뭘 하더라도 잘했을 것 같아요.” 마침 두 아들이 학원을 마치고 돌아와 아빠 품에 안겼다. 아이들도 인터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아빠 얘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