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조세 회피 목적으로 외국 ‘도관회사’와 계약을 맺었더라도 해외에 등록된 특허권 사용료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로써 삼성전자(005930)는 총 706억원의 세금 중 691억원을 아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삼성전자가 법인세 706억원을 취소해달라며 동수원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징수 및 부과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국내 등록 특허 부분 15억원을 제외한 691억원 세금 부과를 취소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삼성전자는 2010년 11월 글로벌 특허관리 전문기업인 ‘인텔렉추얼 벤처스(IV)’가 보유한 특허권 3만2,819개를 3억7,000만 달러(한화 약 4,282억원)에 사용하는 계약을 맺었다. 미국에 본사를 둔 IV는 그해 6월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아일랜드에 설립한 자회사 IV IL을 내세워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 조세협약에 따르면 원천세율 15%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한·아일랜드 조세협약에 따르면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국내 세무당국은 IV IL이 조세회피를 위해 만든 도관회사에 불과하다고 보고 2012년 3월 삼성전자에 942억원의 법인세를 부과했다. 도관회사란 실질적인 소득이나 자산 관리권 없이 오직 조세회피만을 위해 설립된 회사를 말한다. 직원 1~2명이 상주하면서 간단한 서류 작업 등을 처리하기 때문에 문서 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인 페이퍼 컴퍼니와는 다르다. 세무당국은 IV IL을 통해 실질 수익을 얻는 주체는 미국의 IV이므로 삼성전자가 15%의 법인세는 물론 조세 회피에 따른 가산세도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는 이 처분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조세심판원 결정에 따라 부과 세액은 706억원으로 조정됐으나 삼성전자는 이 역시 잘못됐다고 보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은 “IV IL을 계약 체결을 위해 급조된 일회성 회사로 볼 수 없으며 IV 본사와 독립적 시설을 갖추고 있어 설립 목적도 조세회피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에 부과된 706억원의 법인세를 모두 취소하라는 결정이었다. 반면 2심은 “IV IL은 과세 회피를 위한 도관 회사에 불과하고 특허권 사용료의 실질 귀속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특허 실시에 관한 권리는 특허권이 등록된 국가에서만 효력이 미친다”며 국내 등록 특허 사용료에 대한 법인세 15억원만 인정하고 나머지 691억원은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