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 현장. 700여명의 중소벤처기업인이 새해 인사를 나눈 이날 행사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대대표가 “주휴수당 폐지 문제, 근로시간 단축(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문제,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외치자 조용하던 행사장 한쪽에서 박수 소리가 나왔다. 이윽고 박수는 행사장 전체에 퍼졌다. 앞서 마이크를 잡은 이낙연 국무총리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인사말을 할 때는 묵묵히 듣기만 하던 중소벤처기업인들이 나 원대대표의 발언에 순식간에 반응한 것. 박수 소리에 힘을 얻은 나 원내대표가 “지난해 많은 기업이 해외로 엑소더스를 했는데 기업 영속성이 보장되도록 상속세 등 세제 문제도 검토하겠다”고 말하자 박수가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이날 풍경은 최악의 불경기 아래 강행된 정부의 노동정책 드라이브에 중소벤처기업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2년간 최저임금이 29% 오르고 주휴수당까지 최저임금법 시행령에 명문화되며 비용 부담이 늘어났지만 불경기와 주력산업 부진으로 대부분의 중기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원내대표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자 박수와 환호를 보낸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중소벤처기업인들은 저마다 어려움을 토로했다. 심지어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한 중소기업 대표도 있었다.
금형 업계의 한 중기 대표는 “강소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국적을 초월해 경쟁하는데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 금형 업체들의 기술이 이제 일본 수준에 근접했는데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노무비가 증가해 가격경쟁력은 후퇴하고 있다”며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이제는 일본 제품 대비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러니 참다 못 한 회사들이 해외로 나가려는 것”이라며 “일본은 노사가 합의하면 1년에 960시간 일할 수 있지만 한국은 642시간인데 누가 설비투자를 하고 사람을 뽑겠느냐”고 꼬집었다.
용접 업계의 한 중기인은 “해외 업체에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경우 글로벌 완성차들이 공장 이전을 제안하는 케이스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사업환경이 안 좋아지는 것을 해외 업체가 먼저 안다”면서 “그럴 바에는 자기네 나라로 와서 직접 만들어 납품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기인은 “미국 앨라배마에서는 시급 7~8달러에 점심도 안 줘도 되고 공장 부지 가격도 한국의 4분의1”이라며 “제조업 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고 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기 좀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박스 업계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지난해 그렇게 어렵다고 했는데 올해는 오히려 2018년이 그리울 정도”라며 “경영계획을 짜려고 보니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골판지나 패키징 산업은 3D 업종이어서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는데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올라 인건비 부담이 크다”며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줄기차게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외국인 근로자들은 급여를 받으면 한국에서 쓰지 않고 대부분 본국에 송금한다”며 “박스 업종에서는 임금 상승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줄여 사업이 힘들어졌다는 중기인도 많았다. 도로교통시설물 업계의 한 중기 대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복지예산은 많이 늘렸지만 시설물과 SOC 예산을 줄이고 있다”며 “인건비 인상도 그렇지만 일감 자체가 줄어들어 너무 힘들다. 새해가 암울하다”고 씁쓸해했다. 건설현장 펜스를 만드는 한 업체 대표도 “현 정부 들어 SOC 투자가 줄어든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면서 “도로나 공원 리모델링 등 공공사업이 전혀 없어 지난해 150억원이었던 매출이 올해는 120억원으로 줄어들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최근 급격하게 추진되는 노동정책의 현장 연착륙을 위해 지금이라도 최저임금을 업종별·규모별로 차등화하고 주휴수당을 폐지해 임금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탄력근로 요건을 완화하고 기간도 최소 1년까지 연장해야 한다”며 “늦어도 상반기 중에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가 마련되도록 정부와 국회의 관심과 도움을 부탁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이 총리는 “노동시간 단축을 보완하고 최저임금 결정제도를 개선하겠다”며 “정책의 방향은 지키되 그 이행은 유연하게 해가며 성과를 내겠다. 국내외 (경제) 동향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면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서민우·박우인·임지훈기자 ingagh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