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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칼럼] 그럼에도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계속돼야 한다




지난해 친구와 서귀포의 한 해물라면집을 찾았을 때 일이다. 홍합 빼고는 다 동네 해녀들이 물질한 재료로만 요리한다는 믿기 힘든 말을 하던 라면집 주인아줌마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조리시간이 오래걸린다”며 “앞선 손님과 메뉴를 통일하라”고 강요했다.

음식이 나온 뒤에는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는 테이블에만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밥도 한공기 더 줬다. 우리가 주문했을 땐 다 떨어졌다면서. 그는 계산할 무렵 사진을 찍었던 테이블 사람들에게 “블로그 하시면 잘 좀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땐 쓴웃음 지으며 식당을 나섰지만 지금 같아서는 백대표처럼 한마디 해주고 싶다.


“사장님, 장사 그렇게 하는거 아니유. 그럴려면 접어유.”

푸드트럭에서 골목식당으로 이어지는 ‘백종원 시리즈’는 매 시즌별 화제로 자리매김해왔다. 익숙해지면 바뀌는 일반일 출연자들, 때마다 한성격 하는 그들을 얼르고 달래며 때로는 윽박지르기까지 하던 백종원의 호흡이 결합한 ‘개과천선’ 프로젝트는 최근들어 소위 ‘빌런’이라 불리는 만만치 않은 사장님들의 등장으로 한층 재미있어졌다. 시청자들은 어느새 이번 골목에는 어떤 강적이 등장할 것인가 기대했고, 열과 성을 다해 욕하다 반전의 반전을 보고는 감탄하며 식당앞에 줄을 섰다.

백종원은 늘 방송효과는 잠깐이라고 말한다. 몇 달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고. 누구는 계속 줄을 세우고, 누구는 업종을 바꿨으며, 누구는 장사를 접었다. 출발은 같았으나 과정은 달랐고, 결과는 극과 극이었다. 성공과 실패는 레시피와 솔루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선택과 노력이 좌우했다.



출연자들 모두가 서로의 출발선도 현재 위치도 달랐다. 45년 경력의 냉면집 사장님은 가게를 3개월째 내놓은 상태였다. 돈가스집과 횟집은 메뉴가 너무 많았고, 국수집과 제육볶음집은 고집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장사를 갓 시작한 집들은 하나같이 자만심으로 가득했다.

이들에게 ‘장사’를 가르치는 백종원의 모습은 늘 새로웠다. 감탄했다. TV를 보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백종원은 권위로 짓누루는 가장 쉬운 방법을 쓰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해야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생각했고, 실험했으며 대부분 성공했다. 솔루션은 그 이후에야 진행됐고, 성공과 실패는 시청자가 판단했다.

스승이 없는 시대, 일단 나부터 먹고 살면 되는 과도한 경쟁의 시대에서 그의 솔루션은 대가없는 가르침을 전했다. 그들의 빈틈을 정확하게 짚어내 이를 메웠다. ‘수천만원 줘도 받지 못할 솔루션’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맛과 멋보다 식당의 입지, 손님의 성향, 단가 등 계산된 답안이 주어졌을 때 출연자들은 이를 받아들이든지, 외면하든지, 아니면 억지로 받아들이는척 하든지 결론을 냈다.


식당 이야기이되 결코 식당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과정의 단계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백종원은 집을 짓는 과정처럼 기단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쌓고, 지붕을 올리는 단계를 설명했다. 부족하면 즉시 실패하는 세상에서 이같은 조언을 해주는 스승이 또 어디 있겠나. 시청자는 때로 혼내고 위로하며 끝내 웃음짓는 그의 표정에서 뜨끔하기도 하고, 뭉클해하며 용기를 얻기도 했다. 그것이 영세한 골목상권 살리기라는 명목하에 숨겨진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진정한 기획의도였다.





청파동편은 분명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노력을 무너트렸다. 장사를 시작한지 몇 달 되지 않은 식당에 대충 정한 메뉴, 숙련되지 않은 속도, 제대로 익지 않은 음식, 그보다 더 큰 의지박약과 회피·변명으로 일관된 태도까지. 이들은 냉혹한 세상을 너무 낭만적으로만 그리고 있었다. 국수가 불어서 눌어붙었다는 손님에게 “펴드릴 수는 없고 남기실래요”가 정말 가당키나 한 말인가. 대체 출연자 섭외기준이 정말 있기는 한 것인지 묻고싶다.

뭔가 이상하다 싶은 시청자들은 의혹을 쏟아냈다. 피자집 사장은 건물주 아들이며 외제차를 탄다고, 고로케집은 주택사업자가 프랜차이즈로 기획한 식당이라며 분노했다. ‘영세한 골목상권’과 이들의 연결고리는 결코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해명에 해명을 이어가다 도저히 안되겠다 판단했는지 제작진은 애써 촬영한 고로케집 분량을 통편집하는 초강수를 뒀다. 자신들의 실수를 자인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폐지하라는 주장도, 애꿎은 백종원에 대한 비판도 계속 나오고 있다. 본질을 잃어버린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장 강한 목소리다. 수많은 드라마처럼 기획의도를 잃고 시청률에 집중한 결과처럼 제작진이 출연자들의 우를 범하고 빌런(적)이 되어버렸다. 쏟아지는 비판에 대한 깔끔한 해명, 특히 섭외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중의 인내는 길지 않다. ‘골목식당’은 청파동 편으로 신뢰를 잃었다. 다음 골목, 다다음 골목에도 시청자의 매서운 눈초리는 분명 계속 쏟아진다. 벌써 컵밥집과 닭볶음탕집 등에 대한 의혹이 돌고 해명이 시작됐다. 애청자로써 참 안타까운 일이다.



백종원의 솔루션을 계속 보고싶다. “사장님 이러면 안되쥬. 대체 뭔 생각은 하는거여” 하는 말이 들을 때마다 그가 내게도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듯 해 정신이 번쩍번쩍 든다. 냉면집의 온면을 맛볼 때, 김치찌개집의 짤라를 맛보며 소주한잔 드릴까 하니 “가져와봐유”하며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모드로 변신하는 모습도 보고싶다.

무엇보다 ‘푸드트럭’ 핫도그 아저씨처럼, 청파동 냉면집과 포방터 돈가스처럼 노력했으나 마지막 1% 찾지 못한 이들, 실력 있으나 장사의 길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이들을 웃음짓게 만들어줄 수 있는 소중한 그의 마음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쇄신이 필요한 시점임에 분명하다.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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