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책꽂이 - 미래는 와 있다]'환상속의 우리'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피터 루빈 지음, 더난 펴냄

직접 겪은것처럼 뇌 속이는 현존감

사람간에만 느끼는 감정까지 영향

"대상 없이도 유대감 발전할수 있어"

가상현실이 만드는 新인간관계 주목




드라마 ‘알함브라의 궁전’의 인기로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VR은 2D, 3D, 4DX 등의 영상 기술의 다음 단계로 영상을 단순히 감상하거나 관찰하는 것이 아닌 영상 속으로 들어가 등장인물과 자신을 일치시키며 같은 경험을 하며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놀라운 기술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VR은 어느덧 우리 생활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VR이 얼마나 대단한 미래 콘텐츠의 먹을거리로 떠오를 것이고, 인간관계는 도 어찌 뒤바꿔 놓을지 관심이 있다면 세계적 과학잡지 ‘와이어드’ 편집장인 피터 루빈의 ‘미래는 와 있다’를 펴 보라. 전문용어를 통한 설명 보다는 다채로운 사례와 체험담을 통해 아직은 미지의 세계나 다른 없는 VR에 대해 생생하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문화 평론가이기도 한 루빈은 이 책에서 가상현실이라는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과 장치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 정서·심리적 의미, 인간관계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VR은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주장했던 ‘하이퍼 리얼리티’의 ‘현재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모사된 이미지가 더 실제와 같다”는 하이퍼 리얼리티를 주장했다. 또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을 통해 원본과 복사본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결국 복제물들이 점차 원본을 대체하게 되는 사회가 바로 현대 사회라고도 했다. VR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직접 경험이라는 ‘원본’이 VR을 통한 간접 경험인 ‘복제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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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을 통해 이런 현상이 가능해지는 것을 저자는 ‘현존감’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현존감이란 우리 뇌가 가상 경험에 속아서 그 경험이 실제인 양 몸이 반응하도록 촉발할 때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저자는 VR이 지금까지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본적이 없는 이러한 심오한 현존감을 통해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서로의 지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존감이 중요한 이유는 친밀감을 조성하고 창조하고 촉진시키는 능력 때문이다. 저자는 VR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사람 없이도, 적어도 진짜 사람 없이도 이런 감정들을 유도할 능력을 획득하기 시작했다고도 평가했다.

페이스북도 VR에 주목하고 있는데, 새로운 관계를 맺는 도구가 아닌 기존 관계를 심화하는 도구로 보고 있다. 지난 2017년 페이스북은 스페이시스라는 소셜 VR 플랫폼을 발표했는데, 이는 익명이 아닌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 가상세계를 체험한다는 점에서 다른 소셜 VR 플랫폼과는 차별점을 지닌다. 스페이시스의 경우 익명의 누군가와 VR을 했을 경우보다는 훨씬 더 현존감이 강하며, 마치 정말 친구와 직접 만났었다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스페이시스에서 친구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수다를 떨고 난 후, 나중에 이 순간을 기억할 때는 VR을 통해서 만난 게 아니라 실제로 만났던 것과 같은 착각을 하게 될 수 있다. 이렇듯 VR은 인간의 기억을 조작해 가공의 경험을 실제 경험한 것처럼 느끼게 할 날이 머지않았다.

역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VR의 힘이 과연 인간관계 및 인간 간의 상호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아직 먼 이야기일까? VR이 우정을 비롯해 결혼 등 모든 인간관계를 뒤흔들어 놓는 미래가 이미 성큼 다가왔다. 우리는 이 기술을 어떻게 선용할 수 있을까? 이는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인용하며 복사본으로 인해 원본 자체의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과격한 주장을 한 이들도 있지만, 원본 자체까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해서는 안된다. 사진제공=더난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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