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대한민국 생존 리포트 ⑤경제]저출산·고령화에...'소비감소→투자위축→저성장' 악순환

<하> 다가오는 '제로성장' 시대-너무 빨리 닫히는 성장판

출산율 0.96~0.97명 세계 최하위

고령사회 진입도 불과 17년 걸려

마이너스 성장 시기 10년 당겨져

‘맥주 대국’ 일본에서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주요 업체들의 맥주류 출하량이 6년 연속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일본인의 맥주 소비가 줄면서다. 일본의 지방 학교들은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곳이 늘고 있다. 입학정원을 100% 채운 학교는 지난 1996년 96.2%였지만 2017년에는 60%로 뚝 떨어졌다. 도쿄상공리서치는 오는 2040년께 15개 현의 중소기업 수가 2015년보다 4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현상의 중심에는 저출산·고령화가 있다. 일본은 15~64세 생산가능인구 증가율이 급락한 1989년 이후 부동산 버블 붕괴와 맞물려 일찌감치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시작된 1997년부터는 수시로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졌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소비하는 인구 자체가 줄어든데다 기대수명 연장으로 노후 대비가 늘면서 경제 활력은 사그라졌다. ‘소비 감소→투자 위축→수요 부족→저성장’의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20년 전 일본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96~0.97명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합계출산율 1.0명 이하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대로라면 우리 인구는 곧 자연감소 국면에 진입한다. 실제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 인구 증가율은 전년 대비 0.1%에도 못 미쳐 역대 최저였다. 반면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의 14.8%로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1년 만에 노인인구가 1%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르다. 노인인구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는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의 진입에 단 17년 걸렸다. 일본 24년, 미국 71년 등 선진국 평균 45년에 비하면 3분의1 수준이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예상 기간도 선진국은 평균 30년가량이지만 우리나라는 단 9년이다.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중은 38.1%까지 급증해 일본(37.7%)을 앞지르고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고령화는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줄고 취업인구의 생산성도 떨어지면서 노동 공급의 양과 질이 악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마이너스 성장’ 진입 시점이 매년 앞당겨지고 있다. 장인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해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하락 효과를 반영해 장기 성장률을 예측한 결과 우리나라 성장률은 2020년대 연평균 1.2%를 기록한 뒤 2030년대에는 -0.4%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2017년 한국은행이 추산한 2046~2055년보다 마이너스 성장 진입이 10년 이상 앞당겨진 것이다.


소비 감소에 따른 수요 위축도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실제 ‘인구절벽’이라는 용어를 만든 해리 덴트 덴트연구소 이사장은 인구구조상 한국의 소비가 2018년 정점을 찍은 뒤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박시내 통계청 사무관은 여기에 비혼·저출산 추세에 따른 가구구조 변화까지 겹쳐 올해부터 민간소비가 크게 둔화하기 시작해 2020~2024년에는 -1.9%, 2025~2029년에는 -3.6%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복지지출 증가와 세입 감소에 따른 국가재정 악화, 노인인구 증가로 인한 부양률 상승도 저출산·고령화가 유발할 문제다. 장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와 정도가 일본보다 빠르고 심각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침체 수준은 일본보다 더 심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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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투입한 예산은 152조8,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재난 수준의 초저출산 추세를 막는 데는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출산장려금, 민간보육시설 보육료, 무상교복 등 현상적인 비용 지원에 지나치게 치우쳐있다고 지적한다. 이삼식 한양대 교수는 “정부는 여전히 저출산 원인에 대해 미시적인 접근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노동 시장, 문화, 사회보장 시스템 등 사회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연구위원은 “고령자의 취업률이 높은 우리나라는 평생학습 강화, 고령자 특성에 맞는 일자리 창출, 고용 지원서비스 선진화 등 고령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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