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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PEF 330조대로 급성장...산업·자본시장 판도 바꿔

역할 커지는 사모펀드

M&A·지배구조 개편 요구 등

국내 산업환경 해결사로 우뚝

작년 시장규모 14.3%나 커져

국민연금 등 수익률에도 도움




“정부 규제 강화로 급하게 매각해야 하는 기업 인수, 유망하지만 자금난에 빠진 기업 지원, 해외 기업 공동 인수 제안, 재무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높이기, 기업 지배구조 개편 요구….”

국내 주요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지난해 자본시장에서 거둔 성과들이다. 자본시장에서 PEF는 더 이상 ‘먹튀’나 ‘기업 사냥꾼’이 아니다. 기업뿐 아니라 산업계 및 자본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국내 PEF 시장 규모는 지난 2004년 금융당국이 경영참여형 PEF 제도를 도입한 뒤 매년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말 330조원대로 급성장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4.3%나 시장이 커졌다. 단순히 덩치만 커진 것은 아니다. 자본이 모이면 실력도 쌓이듯 역할이 훨씬 다양해지고 입체적으로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급변하는 국내 산업 환경의 해결사로 올라섰다.

지난해에는 유독 이런 모습이 도드라졌다. 정부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면서 존재감이 부각 됐다. 한앤컴퍼니가 대표적이다. SK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SK해운을 한앤코에 매각했다. 한앤코는 SK D&D 지분도 인수했다. 한앤코는 지난해 3월 CJ그룹의 조이렌터카도 인수했다. 기존에 인수한 기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홍콩계 PEF 운용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LG그룹의 서브원 MRO 부분 인수를 추진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미래에셋대우PE가 LG그룹 판토스의 대주주 지분을 인수한 사례도 있다. 매물로 나와 장기간 주인을 찾지 못하던 GS그룹의 시스템통합(SI)업체인 GS ITM을 인수한 것도 IMM과 JKL파트너스였다.


PEF는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이뤄 해외기업을 인수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임석정 대표가 이끄는 SJL파트너스는 KCC·원익그룹과 손잡고 미국 모멘티브퍼포먼스머티리얼을 인수했다. 3조3,700억원으로 지난해 국내 최대 인수합병(M&A)다. 웅진그룹이 코웨이를 되찾기 위해 PEF인 스틱과 손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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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F는 산업구조 재조정 과정에서 촉매제 같은 역할도 한다. H&Q코리아는 SK그룹에서 분사해 한국판 ‘아마존’을 꿈꾸는 11번가에 5,000억원을 베팅했다. 신세계그룹의 쓱닷컴에도 어피너티와 블루런벤처스가 1조원을 투자했다. 인터넷은행 케이뱅크는 MBK파트너스와 IMM이 주요 주주로 참여해 변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제조업 위기로 중소형 자동차 부품사 등이 쏟아지고 있고 상속세 부담으로 매물로 나온 기업들도 PEF가 인수하고 있다. 진대제 펀드로 잘 알려진 스카이레이크는 자동차 부품사인 KDA를 인수했다.

해외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만 자금난에 빠진 기업의 구원투수로 나서기도 한다. VIG파트너스는 한식 프랜차이즈 업체 본촌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본촌은 국내 매장은 없지만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치킨으로도 잘 알려졌다. 현재 미국 85개, 아시아 245개 등 전 세계 8개국에서 325개 본촌 브랜드 매장을 운영 중이다. VIG가 인수한 뒤 재무구조를 개선해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PEF는 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넘어 사업 구조조정으로 기업 가치를 높인다. PAG의 영실업이 대표적이다. PAG가 영실업을 인수한 2015년 영실업의 매출은 771억원, 영업이익은 63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7년에는 매출 1,564억원, 영업익 300억원으로 업계 1위로 올라섰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경영참여형 PEF인 KCGI는 지난해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 10.71%, ㈜한진 지분 8.03%를 확보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PEF 시장의 활성화는 수많은 연기금 가입자, 공제회 회원의 이익으로 이어진다. PEF 자금 대부분을 기관투자가로부터 받아 운용하고 수익을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해외는 PEF 투자자가 연기금, 학교 재단, 펀드오브펀드, 패밀리 오피스 등으로 다양하고 투자자 수도 많지만 국내는 아직 연기금이 절대적이다. 국민연금 등의 수익률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PEF 시장 활성화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통 제조업에서 최첨단 정보기술(IT)산업으로의 산업구조 변화가 시작된 한국의 특성상 PEF의 역할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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