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10년]투자 장벽에 퇴직연금 첫 손실...법인 지급결제 허용도 감감

<상> 규제에 우는 자본시장

기금형 퇴직연금도 국회 문턱 못넘어...다양한 수익 창출 불가능

초대형 IB도 출범 1년 넘었지만 2개사에만 '단기금융업' 허가

증권사 체질 개선 힘쓰지만 금융당국 뒷받침 없으면 성장 요원

오는 2월4일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10년이 되지만 여전히 여의도 증권가는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육성을 외쳤던 금융당국은 여전히 낡은 프레임에 갇혀 규제 장벽을 걷어내지 않고 있다.   /서울경제DB오는 2월4일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10년이 되지만 여전히 여의도 증권가는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육성을 외쳤던 금융당국은 여전히 낡은 프레임에 갇혀 규제 장벽을 걷어내지 않고 있다. /서울경제DB



국민들의 노후 절벽을 위한 최소한의 보루인 개인퇴직연금이 지난해 손실을 봤다. 퇴직연금 중 확정기여형(DC), 개인형(IRP) 수익률이 마이너스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RP는 2012년 도입 이후 첫 역성장이다. 겹겹이 쌓인 규제 탓에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기능이 막힌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굳이 퇴직연금 시장이 아니어도 금융투자 업계에는 낡은 규제로 제 기능을 못하는 분야가 넘쳐난다. 선진 투자은행(IB)을 육성하고 국민들에게 자산 증식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규제 프레임’에 갇혀 있다. 10년이 흐른 지금 자통법의 성과와 과제를 살펴본다.





2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개인퇴직연금 중 DC와 IRP는 지난해 각각 -1.72%, -2.0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확정급여형(DB)만 그나마 1.33%로 간신히 플러스를 냈지만 은행예금 이자는 물론 지난해 물가상승률(1.5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퇴직연금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낮은 수익률에 머무르는 것은 다양한 수익 창출의 기회를 막는 낡은 규제 탓이다. 현재 퇴직연금 시장에는 사모집합투자증권, 파생상품위험평가액 40%를 초과하는 파생형 펀드 등이 진입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도 라임자산운용·타임폴리오 등 자산운용사들은 올해 사모재간접펀드를 통해 퇴직연금 시장 진입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해 최악의 증시 상황에도 연평균 10%대 이익을 낸 운용사들이 진출할 경우 국민들의 자산증식 기회는 늘어날 수 있지만 현행 규제대로면 이들이 원하는 상품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모재간접펀드는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투자금지상품으로 분류한 파생상품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대체투자·메자닌 등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운용사들에 ‘메기효과’를 기대하지만 꿈도 꾸기 전에 규제에 발목이 묶인 셈이다. 사모재간접펀드는 지난해 급락장에도 헤지 전략으로 수익률을 방어하는 등 최근 급성장하고 있지만 당국은 여전히 헤지 전략은 위험하다는 과거의 프레임으로 재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금형 퇴직연금도 자통법 도입 이후 금융투자 업계가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한 호주(9.0%), 네덜란드(8.2%), 스웨덴(6.9%), 미국(5.1%) 등은 모두 안정적 수익을 바탕으로 은퇴 후 노후를 보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쥐꼬리만 한 수익률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는 “자본시장법 시행 10년을 맞아 퇴직연금뿐 아니라 자본시장 규제 등에 대해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퇴직연금 마이너스 전환은 심각한 시그널로 이를 계기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등을 포함해 다양한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자통법 시행과 함께 출범한 금융투자협회가 10년째 요구 중인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 허용’도 대표적인 낡은 규제다. 법인 지급결제는 IB 업무의 기본적인 사안이고 해외 IB와 경쟁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지만 은행권 반발과 금융당국의 모르쇠로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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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탓에 초대형 IB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정작 달라진 것은 초대형 IB 간판뿐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자기자본 4조원을 채우면 가능한 단기금융업(발행어음)은 아직까지도 2개사(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에만 허락된 영역이다. 규제를 풀어주는 것은 고사하고 금융당국은 갖가지 구실로 징계안을 만지작거리며 증권사의 목줄을 잡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공정거래위원회 수사 탓에, 삼성증권은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운신의 폭이 제한된 상태다. 한국투자증권에는 영업정지, 임원 해고 등의 중징계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대형사를 중심으로 국내 증권 업계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위한 체질 개선에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익구조의 다변화다. 과거 증권 업계의 최대 먹거리는 ‘거래 수수료’였지만 이제는 기업공개(IPO)를 비롯해 채권발행(DCM), 주식발행(ECM), 인수합병(M&A) 주선 등 IB 수익이 증권사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되고 있다. 증권 업계는 IB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우며 변화된 시대상에도 발맞추고 있다. NH투자증권이 지난해 국내 1세대 IB 전문가 정영채 사장을 CEO로 임명한 후 올해 한국투자증권(정일문 대표), KB증권(김성현 대표), 신한금융투자(김병철 대표 내정자) 등도 정통 IB맨을 전면에 내세우고 조직도 IB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17년 기준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대형 증권사 7개사의 수익구조를 분석한 결과 2013년 48.3%로 절반에 육박했던 위탁매매 수수료는 2017년 28.6%까지 쪼그라들었다. 반면 기타 수익을 포함한 IB 분야는 같은 기간 8.6%에서 23.1%로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올해도 안개 낀 증시에 수익원은 IB 분야라며 증권가는 경쟁력 강화에 힘쓰는 모습인데 금융당국의 뒷받침 없이는 성장이 요원한 상황이다. /김보리·김광수기자 boris@sedaily.com

김광수·김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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