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부담 때문에 재정 파탄이 우려된다”는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의 절박한 호소에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즉각적인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기초단체장의 요청에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는 기초연금·아동수당 등 각종 복지예산의 배분 방식에 대한 포괄적 개선 방안 논의에 착수하기로 했다. ★본지 1월18일자 1·4·5면 참조
문 대통령이 이날 직접 수습에 나섰으나 본질적으로 ‘비용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 설계 없이 정부의 복지예산 증액이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은 되레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을 통해 기초연금법 시행령의 엉터리 규정 또한 여실히 노출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 청장의 요청과 관련해 “상당히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며 “이 부분에 대한 제도 개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정 청장은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실로 편지를 보내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의 지자체 부담률 책정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방식은 노인 비율이 20% 이상이면 지자체 부담률이 1%로 가장 적고 14∼20%는 4%, 14% 이하는 9%를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북구처럼 노인인구는 많은데 노인인구 비중이 낮은 지자체는 지자체 부담률이 높아 재정 파탄 위기에 몰려 있다는 내용이다. 정 청장은 기초단체의 재정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초연금법 시행령의 문제도 지적했다. 현행 기초연금법은 정부와 기초단체가 기초연금 부담비율을 정할 때 ‘재정자주도’와 ‘노인 비율’을 모두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시행령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 시행령에는 재정자주도를 90% 이상, 80∼90%, 80% 미만 3단계로 구분해 놓았는데 대부분의 기초단체 재정자주도는 전부 80% 미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말하자면 재정자주도가 80%에 가까운 기초단체나 부산 북구처럼 30%도 안 되는 기초단체나 똑같은 비율로 기초연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부산 북구 같은 단체는 아주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정 청장의 지적에 공감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또 부산 북구처럼 사회복지비지수가 55% 이상이면서 재정자주도가 35% 미만인 기초단체 4곳(부산 북구, 광주 북구, 광주 서구, 대구 달서구)에는 국가의 기초연금 부담을 늘려달라는 정 청장의 요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할 뜻을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오늘 원래 우리가 예정했던 안건은 아니지만 이 부분을 함께 논의해주시기를 당부드리겠다”고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수보회의 이후 브리핑을 통해 “결론적으로 복지부가 중심이 돼서 기초연금이 기초단체에 미치는 영향 및 배분 방식에 대한 포괄적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며 “아동수당 등 비슷한 성격의 복지예산에 대해서도 재정자주도 등에 따라 발생하는 기초단체 간 불균형을 같이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