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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사회, 우리가 보듬어야할 이웃] "강제입원 땐 말못할 트라우마..취업도 막혀 경제활동 불가능"

⑦ 마음병환자 - 사회·경제적 고통 언제까지

4명 중 1명 정신질환 시달리지만

사회적 편견에 방치하다 증상 악화

강제입원당해 강한 약물·결박까지..

자립위한 협동조합 설립마저 난관

정부 지원도 환자보다 기관에 집중

정신질환 냉대하는 인식 개선 시급

서호석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강남 차병원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강남차병원서호석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강남 차병원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강남차병원



“잠을 거의 못 자요. 눈을 감을수록 정신만 더욱 또렷해집니다. 수면유도제도 처음에는 먹자마자 잠들었는데 계속 복용하다 보니 효과가 점점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약을 먹어도 말짱해요. 그래도 술을 마시면 저도 모르게 잠들어서 금요일에는 집에서 TV를 보며 맥주를 마셔요. 그렇게 주말 내내 잠들면 주중에는 조금 덜 자도 일할 수 있어요. 스트레스를 또래보다 많이 받는다는 생각은 없어요. 다들 이만큼은 받으며 일하지 않나요?”

30대 초반 직장인 송지원씨는 평범했다.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을 다닌다. 결혼 얘기를 진행 중인 남자친구도 있다. 다만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뿐이다. 송씨는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는 주변 친구들에게 “요즘 결혼 전 병력증명서를 떼는 게 유행인데 아무리 불면증이라도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으면 결혼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극구 사양하고 있다.




2215A06 정신질환자범죄율


질병분류기호 F코드. 정신 및 행동장애를 뜻하는 이 코드는 지난 1995년 12월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오랫동안 공포의 대상이었다. 정신과에서 상담만 받아도 F코드를 받아 사람들이 정신과를 피할 정도였다. 부정적인 편견을 없애기 위해 2011년 정신건강의학과로 이름을 바꿔도, 최근 경증 우울증을 F코드에서 제외하는 등 범위를 줄여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네 명 중 한 명꼴로 평생 한번 이상의 정신질환을 겪는다. 중증 정신질환도 우울증·불면증 등의 가벼운 마음병에서 시작한다. 우울감이나 우울증은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경찰청이 자살 동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한 사람의 30.3%가 정신과적 문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마음병을 앓기 시작해도 병원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경증 환자일 때는 사회적인 낙인이 무섭기 때문에, 중증 환자일 때는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인 강제입원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서호석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직도 소화가 잘 안 되거나 호흡이 가빠지는 등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정신과를 찾지 않는 사람이 많다”며 “우울증·불면증 같은 신경증적 증상도 방치하면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나는 중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신질환의 병명은 다양하지만 크게 우울증·조현병·공황장애·불안장애·조울증을 5대 질환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최근 의료계는 선천성보다 후천성 질환이 늘어나고 있어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면증도 넓은 의미에서 정신질환에 포함하는 추세다. 스스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울증과 불면증이 중증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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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는 20대 후반부터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다. 다니던 회사에서는 나올 수밖에 없었고 가족들에 의해 여덟 차례나 강제입원을 당했다. 이 대표는 마음병 환자들 사이에서 자신처럼 강제입원을 당했다가 밖으로 퇴원할 수 있었던 사람을 ‘생존자’라고 부를 정도로 폐쇄병동 및 강제입원의 폐해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강제입원을 당하면 신체적인 자유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거기서 철저한 을이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구속복을 입히거나 팔다리를 묶고 심한 경우 치사량에 근접하는 강한 약물을 투여하기도 합니다.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들이니까요. 자의로 나갈 방법도 거의 없습니다. 폐쇄병동에서는 저희가 입원만 해 있으면 한 달에 100만원 정도의 보조금이 나오고, 가족들에게 저희는 있으면 골머리만 썩히는 존재니까요.”

금전적인 부분은 마음병 환자의 또 다른 고통이다. 중증 마음병 환자들은 오랜 기간 치료가 필요한데다 사실상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만큼 비용부담이 다른 질병에 비해 높다. 경증 마음병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혹시나 질병 이력이 남을까 봐 비보험으로 진료를 받는 경향이 잦다. 실손보험 등에서도 마음병 환자의 가입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부담은 배가 된다. 정부의 지원은 기관 및 병원에 집중돼 있어 환자의 부담을 덜기에 부족하다.

마음병 환자들의 자립모델을 만들기 위한 협동조합 설립도 난관에 부딪힌 상태다. 장애인의 취업 알선 등 복지를 위한 법률인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는 정신건강복지법 등 다른 법률을 적용받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적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정신장애인의 자활을 돕는 협동조합도 정신과 의사, 자원복지가 등을 대표로 세워야 하는 실정이다. 이 대표 역시 “파도손을 설립할 때 사단법인이 아닌 협동조합을 꿈꿨지만 서울시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협동조합법이 만들어질 당시 협동조합 콘서트에서 발표도 진행했던 만큼 아쉬움은 더 컸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외래치료명령제와 같은 제도적 보완은 물론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연예인들이 연이어 병력을 고백한 공황장애가 한 예다. 서 교수는 “최근 5~10년간 공황장애 때문에 병원을 찾는 이들이 두 배 이상 늘었다”며 “연예인들의 커밍아웃으로 공황장애라는 병에 대한 사회적 두려움이 줄고 정신과 진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울·불안은 언제든 올 수 있으니 필요할 때 언제든지 눈치 보지 말고 병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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