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가 3주간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풀고 장벽예산 협상을 벌이는 시한부 합의안에 동의함에 따라 지난해 12월22일부터 시작된 최장기 셧다운 사태가 일단 종료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셧다운 장기화에 따른 혼란과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물러서면서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에게 굴복한 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달 15일까지 장벽예산 합의가 타결되지 않으면 셧다운을 지속할 것이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민주당의 하원 장악 이후 형성된 ‘트럼프 대 펠로시’ 대결구도의 첫 승부에서 펠로시에 사실상 완패를 당한 그가 오는 2020년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의회와의 역학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당장 승기를 잡은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러시아 커넥션’에 불을 붙이며 백악관에 대한 2차 공세를 이어갔다.
백악관과 공화·민주당의 의회 지도부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셧다운 사태를 해소해 연방정부를 재가동하는 대신 다음달 15일까지 3주간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협의를 진행하는 ‘시한부 정부 정상화’에 전격 합의했다. 상·하원은 이날 곧장 임시 예산안을 표결에 부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서명해 35일의 최장기 셧다운 사태는 일단락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기 예산안 서명 후 백악관에서 “정부 문을 다시 열게 돼 자랑스럽다”며 “의회의 초당적 위원회가 국경 안전 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회에서 공정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정부가 2월15일 다시 셧다운에 돌입하거나 미 헌법과 법에 따라 비상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을 사용할 것”이라며 셧다운 재개 또는 국가비상사태 선포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장벽예산 없이는 셧다운 종료도 없다”며 한 달 넘게 셧다운을 끌어온 트럼프 대통령이 ‘빈손’으로 후퇴하자 블룸버그 등 미 언론들은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에게 항복했다”며 민주당이 셧다운 사태에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의회 전문매체 더힐은 “트럼프가 셧다운 장기화에 따른 혼란으로 압박이 커지자 마지못해 굴복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건부 합의안과 비슷한 대안을 13일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제안했지만 거부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에게 밀려 29일로 예정됐던 신년 국정연설을 연기한 데 이어 셧다운 사태에서 완패했다는 평가가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폭풍 트윗으로 여론에 반발했다. 그는 “21일은 매우 빨리 간다”면서 “장벽은 세워질 것이고 범죄는 무너질 것!”이라는 구호와 관련 영상을 연거푸 트위터에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진검승부에서 승리를 거둔 펠로시 의장은 기세를 몰아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연루 의혹을 제기하며 2차전을 예고했다. 그는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비선 참모’로 활동한 로저 스톤이 ‘러시아 커넥션’을 수사하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에 의해 24일 전격 기소되자 다음날 하원의장 성명을 통해 “37건의 기소에도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계속 방해하는 것을 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개인적·경제적인 약점을 잡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밝혔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약점인 러시아 유착 의혹에 대해 특검 수사를 계속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의회 차원의 조사도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뉴욕타임스(NYT)가 26일 “트럼프 대통령과 최소 17명의 참모가 2015년 6월 대선 출마 선언 후 취임 전까지 직접 만남뿐 아니라 전화통화·e메일 등을 포함해 최소 100차례 접촉했다”고 보도하며 ‘러시아 커넥션’ 의혹이 재차 불거지자 펠로시 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가 이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