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5월4일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생활가전 업체 한경희생활과학이 창립 18년 만에 기업회생절차를 밟겠다며 신청서를 제출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가 휘청거리고 끝내 무너지는 모습을 소리 없는 울음으로 지켜봐야 했던 한경희(55·사진) 대표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겪었던 갖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로 선보인 제품이 대한민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짜릿한 희열도, 승승장구하며 대기업 총수 못지않게 유명해졌던 과거도 기억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재무팀장의 충고대로 발 빠르게 사옥을 매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고 굳게 믿었던 주변인의 배신으로 사기 혐의로 피소되면서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던 아픈 기억도 ‘한경희’라는 사람의 퍼즐을 채우는 소중한 장면이었다.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사건들이 해일처럼 몰려왔을 때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고 남들 보란 듯이 꼭 성공하겠다”며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다시 성공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오전 출근길부터 실천으로 이어졌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 세계사 연표를 붙이고 ‘역사를 잊지 말자’고 매일 다짐한 것. 그렇게 이를 악물고 재기를 위해 온 힘을 쏟은 결과 평균 3년은 족히 걸리는 기업회생절차를 10개월 만에 조기 졸업했다.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다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영업실적이 만들어낸 소중한 결실이었다.
‘여성 벤처 1호’ 기업인이자 ‘성공적으로 부활한 여성 기업인’이라는 타이틀을 새롭게 거머쥔 한 대표는 1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경영인들이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으로 암과 같은 중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다”며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은 상황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어떻게든 다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암 같은 병에 걸리면 안 된다는 목표까지 세우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렇듯 감내하며 지나온 세월은 하루도 헛되게 쓰지 않는 오랜 습관과 맞물려 ‘한경희생활과학의 재기’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보통 새벽2시나 3시쯤 잠들어서 6시께 일어나는 것 같네요.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렇게 습관이 들었죠. 기업인으로서 회사를 잘 꾸려나가는 것에 우선 공을 들이고 또 사회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한 일도 함께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써야 해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니 잠자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한경희의 삶의 궤적 속에서 직함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생활가전 업체인 한경희생활과학의 창업주이자 대표이사, 세계여성이사협회(WCD) 공동 대표, 그리고 두 살 터울의 아들 두 명의 엄마이자 주부. 그가 거쳐온 경력까지 포함하면 명함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교육인적자원부 교육행정사무관까지 그 폭이 크게 넓어진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기업인이지만 그의 사회생활은 국제기구에서 시작됐다.
“해외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안고 대학을 졸업한 후 IOC의 문을 두드렸어요. 하지만 국제기구의 사무국에서 일하면서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해졌고 결국 경영학석사(MBA)를 따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유학길에 올랐죠.”
지금이야 많은 학생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드러내지만 한 대표가 대학을 졸업했을 1980년 후반에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취업이었다. 그 뒤 MBA를 취득하고 한국에 돌아와 5급 공무원으로 커리어를 재정비한 것도 자신의 뚝심과 가족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혼한 여성이라면 일 대신 가정을 선택해야 한다는 묵시적인 압박이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한 대표와의 대화에는 중간중간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애환이 묻어났다. 그는 ‘터울이 적은 아이 둘을 일하며 키우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그리고 시터(아이돌보미)와 저까지 총 4명의 여성이 아이 둘 키우는 데 매달렸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한 대표는 아이들의 편식 습관을 고민하며 ‘만약 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봤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동생이 생기면 엄마가 집에 있을 것 아니냐며 “동생 낳아달라”고 했던 아이의 투정에 마음이 서늘했던 날도 있었다고 했다. 일하느라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 별로 없어 아쉬워하다 기억 속 아이와의 추억을 살뜰하게 모아 한 권의 만화책 ‘철이와 찬이네 가족 이야기’로 엮어내기도 했다.
이렇듯 회사 일을 하면서도 여성이자 엄마라는 이유로 가사와 출산·육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을 살았던 한 대표는 “지금 제가 WCD 한국지부에서 활동하는 것도 다음 세대의 여성들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 원하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특히 한국 경제구조가 맞벌이 가정이라면 주거비와 교육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경제활동인구 자체도 급속히 감소하고 있기에 여성들의 활동을 촉진해 한국 경제의 활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한 대표가 속해 있는 WCD는 여성 등기이사들의 전 세계적 모임으로 각 회사 이사회 소속 여성 임원들의 지식과 시작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다. 세계의 여성 인재들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이사회에서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지부에는 70명 정도의 회원이 있으며 전 세계에는 80여개 지부 4,000여명이 있다. 특히 올해 WCD는 ‘여성 임원 할당제’를 법제화해 상장기업 또는 일정 수준 이상의 비상장 기업과 공공기관에 여성 임원이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도록 의무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 메리츠자산운용을 통해 선보인 ‘메리츠 더 우먼 펀드’처럼 여성 친화적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펀드의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를 펼칠 계획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5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계경제포럼(WEF)이 2017년에 발표한 성 격차 지수는 144개국 중 118위로 하위권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제여성기업이사협회(CWDI)가 2017년 5월에 발표한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4%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20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 대표는 “올 한 해는 (최 의원이 발의한) 법안 통과에 힘을 불어넣으려고 한다”며 “성별 간 존재하는 임금격차와 유리천장이라고 하는 승진 불이익 등이 없어져야 여성들이 일하기 편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가 창업에 뛰어든 계기도 여성의 삶을 위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가 처음 스팀청소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것은 서양인의 체구에 맞춰 만들어진 가전제품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카펫 생활을 전제로 청소기기를 선보이는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는 온돌 생활에 마룻바닥이 기본이다.
“당시만 해도 걸레 청소가 모든 여성의 숙제였어요. 구부려 무릎을 바닥에 댄 채로 힘들게 바닥을 닦아야 했죠. 설거지든 청소든 뜨거운 물로 살균하며 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리미에 나오는 스팀이 걸레에서 나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번뜩 들었던 거죠.”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스팀청소기라는 아이디어는 그의 2년을 통째로 접수했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길이기에 개발 과정에서 실패가 잇따르기도 했다. 공대 출신이 아닌 한 대표는 거듭되는 개발 과정에서 엔지니어와 협의를 계속하다 보니 ‘준공대생’이라고 할 정도로 관련 지식이 쌓이기도 했다.
그는 스팀청소기를 개발하던 시절 자신이 “걸어 다니는 민폐로 불렸다”고 털어놓았다. 여성인 그가 제조공정에 대한 의견을 내놓고 많은 이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작업장을 들락날락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남성 엔지니어들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
했다”며 “로켓도 우주로 쏘아 올리는 세상인데 각 가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이 간단한 일조차 기술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기에 눈총을 받아도 노력을 계속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 번 설정한 목표는 꼭 이뤄낸다’는 집념을 바탕으로 1999년 스팀청소기를 주력상품으로 내걸고 설립한 한경희생활과학을 주부들의 입소문만으로 창업 11년 만인 2010년 매출 1,000억원에 육박하는 회사로 키워냈다. 고집스러운 그의 집념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빛났다. “기질상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이지만 기업회생이라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는 그는 “기업이 부활하고 회생하는 것을 돕는 법원이기에 (경영자들이) 두려워할 것만은 아닌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회생 과정을 잘 헤쳐나가는 것에 대해 책을 써보고 싶다”며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주부 소비자들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여름 한경희생활과학이 첫선을 보인 세탁소 수준의 고압 스팀 분사력을 지닌 ‘듀오스팀(GS-7000)’다리미는 다시 출발점에 선 한 대표가 주부 소비자들을 위해 내놓은 신제품이다. 첫 제품이었던 스팀청소기가 가사노동의 어려움을 적극 덜어줬던 것과 같이 이 제품도 가성비를 갖췄으면서도 사용 편의성을 높이는 데 방점을 찍었다. 한 대표는 “올해도 스팀다리미를 포함해 죽 제조기, 고속 블랜더, 손목 안마기, 공기청정기 등 생활에 편리함을 더해주는 다양한 제품으로 찾아뵈려 한다”며 “창업 초기에 어느 한 고객이 ‘친정엄마가 어떤 선물에도 감동하지 않으셨지만 스팀청소기를 받고 고맙다고 하셨다’는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그 편지의 마음에 보답해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She is...
△1964년 서울 △1987년 이화여대 불문학 △1991년 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근무 △1998년 교육인적자원부 교육행정사무관 △1999년 한경희생활과학 설립 △2004년 벤처 대상 중소기업 표창장, 신지식인 선정 △2005년 발명의 날 대통령표창 △2008년 신기술으뜸상 특별상 수상, 월스트리트저널 주목할 만한 여성 기업인 50인 선정 △2010년 노동부 청년고용 홍보대사 위촉, 제12회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 우수상 △2013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16년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