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A군의 부모는 지난해 아이의 몸에 난 자해 상처를 보고 말문이 막혔다. 아이와 같은 반인 B군이 A군에게 자해로 자살한 사람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자료를 보여주면서 A군에게 따라 하라는 듯 압박했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낀 A군이 ‘잘되지 않는다’며 꺼려 하자 B군은 “그렇게 해서 (자해가) 되겠냐. 더 세게 눌러라”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B군은 이 밖에도 A군에게 카카오톡 메신저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강요한 뒤 메신저 내 모든 친구를 삭제하는 등 괴롭혔다고 했다. A군의 부모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초등학생이라는 이유로 특별교육 1일 징계를 내렸다”며 “초등학생의 학교폭력 행태는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고 흉악해지는데 ‘초등학생이라서…’라는 식의 암묵적인 봐주기 룰을 정해놓은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학교폭력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가해자의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단순한 신체·언어폭력을 넘어 최근에는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초등학생 단계에서마저 성폭력·흉기폭행 같은 강력범죄 수준의 폭력이 나타나는 지경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전국의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약 9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표본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은 2.4%로 나타났다. 직전 조사였던 2018년 1차 조사 때의 1.3%보다 두 배에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다. 학교폭력 피해는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높게 나타났다. 초등학교 3.6%, 중학교 2.2%, 고등학교 1.3% 등이다. 초등학생의 학교폭력 경험 빈도가 늘자 교육부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폭력 종합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피해 유형별로는 언어폭력(42.5%) 피해가 가장 높았다. 신체폭행(17.1%), 집단따돌림(15.2%), 사이버괴롭힘(8.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자극적인 미디어·인터넷 정보에 노출되면서 성폭력 같은 강력범죄 발생 빈도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의 학폭위 심의현황에 따르면 학폭위에서 다뤄진 성폭력 심의 건수는 2013년 878건에서 2017년 3,622건으로 4년 새 무려 412% 급증했다. 특히 초등학생은 같은 기간 130건에서 936건으로 7배에 가까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스마트폰 등을 통한 각종 유해물 노출이 활발해지면서 성추행·성폭력, 사이버폭력, 스토킹 등 폭력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이 성인범죄 뺨치는 수준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교육당국은 학교폭력 대응과 관련해 여전히 ‘교육적 해결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공개한 학교폭력 대응절차 개선방안을 통해 △학교자체해결제 도입 △1~3호 조치 가해학생에 대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유보 △학폭위 교육지원청 이관 등의 구상을 공개했다. 학폭위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개별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도록 한 정도를 빼면 대체로 온건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폭력 재발 방지 효과가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범주에 국한하지 말고 사회적 측면에서 폭력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근영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초등학생 성폭력 가해자의 특성을 보면 묘하게도 성인들의 성폭력 범죄 양상과 상당히 닮은 부분이 있다”며 “초등학교에서의 폭력 문제가 성인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유리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전체 사회 차원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