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지난달 17일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동차 및 부품 수입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비공개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했다. 조사 결과는 3급 기밀로 분류되기 때문에 관세 부과 대상국 등 세부적인 내용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큰 틀에서 수입 자동차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 제출일로부터 90일 이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부과 여부와 세율·이행기간·대상 등을 결정하게 된다. 한국 자동차 수출의 30% 이상이 미국 시장으로 가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대상국에 포함될 경우 큰 피해가 우려된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적용 제외가 될지, 전 차종에 25%의 관세가 부과될지, 또는 자율주행차·전기차 등 첨단기술이 적용된 차량에 대해서만 관세가 부과될지 최종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3월에도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10~25%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5% 관세를 면제하는 대신 철강 수출물량을 지난 2015~2017년 평균 물량의 70%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고관세 부과로 수출이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효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국의 압력에 밀려 철강쿼터를 도입하는 선례를 남긴 데 대한 부담이 있었고, 실제로 KOTRA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철강의 대미 수출물량은 24% 정도 감소해 대미 수출국 중 감소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국과 일본이 관세제외 승인을 많이 받은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이 당초 쿼터를 받은 국가에 대한 품목제외를 허용하지 않았다가 8월부터 허용한 탓도 있다. 그러나 협상 당시 여러 가능성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이 ‘국가안보’ 영역에 상업적 부분까지 포함하면서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무역확장법 232조를 남용할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물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실효성이 급감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북관계, 방위비 분담, 중국과의 관계 등으로 미국과 통상현안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1월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이 상무부에 대해 ‘특별시장상황(PMS)’을 근거로 한국에서 수출한 유정용 강관에 부과한 반덤핑관세 취소 명령을 내렸던 점 등을 감안하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
트럼프의 가장 큰 견제세력은 시진핑이 아니라 미국 내부에 있다. 미국과의 통상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미국 내부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국 의회·법원·생산자협회·소비자단체 등에 대한 적극적 대응과 아웃리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상무부의 보고서 제출 직후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한국산 자동차를 제외해달라는 요구와 미국 무역확장법 남용에 반대하는 ‘2019 양원합동의회통상권한법안’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개서한을 미국 의회 지도자 50여명에게 발송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발 빠른 대응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법안은 무역확장법에 기반한 대통령 행정명령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국가안보를 이유로 취해지는 조치이기 때문에 대상품목도 ‘군수품, 에너지 자원, 중요 인프라 시설’에 한정하고 품목선정도 상무부가 아닌 국방부가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미국자동차부품제조협회도 부품업체의 투자감소와 가격상승 등을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을 반대하고 있고 미시간 앤아버 자동차연구센터도 36만개 이상의 일자리 감소가 예상된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트럼프가 재임하는 한 미국의 무역수지 불균형을 이유로 한 통상압력이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반도체 등으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을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 내부세력을 우군으로 만드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애써 쌓아놓은 네트워크마저 하루아침에 날리는 우는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