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의 사유재산권 인정 등을 둘러싼 ‘무기한 개학 연기(a.k.a.집단휴업)’ 투쟁이 4일 채 하루도 넘지 못하고 일단락됐습니다. 투쟁을 주도했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이날 오후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조건 없이 투쟁을 철회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교육당국은 한유총 소속 일부 사립유치원(239곳)이 개학 연기를 실제 행동으로 옮긴 만큼 법과 원칙에 따라 강경 대응할 것을 시사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의 한유총 법인 설립허가 취소 방침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강경 대응에 개학 연기 문제는 겨우 해결했지만 아직 본 게임은 시작하지도 않았죠. 오늘 ‘썸_레터’에서는 이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 한유총은 왜 ‘무기한 개학 연기’ 초강수를 뒀을까?
핵심은 사립유치원이 사유재산임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한유총은 사립유치원 설립에 최소 30억 원 이상 개인자산이 들어간 사유재산임을 강조합니다. 30억 원은 유치원 용지와 건물 건립 등에 쓰인 돈이죠. 이를 사유재산으로 인정해 사용, 수익, 처분권 등을 보장하라는 주장입니다.
사립유치원은 손실이 났을 때 설립자가 책임지고 운영이 어려워지면 개인이 파산하는 구조라고 말합니다. 국공립유치원은 세금으로 지어지고 손실이 생겨도 국가가 다 지원해준다면서 말이죠. 수십억 원을 투자했지만 월급 외 수익은 1원도 가져갈 수 없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겁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으로 내놓은 국가관리 회계 시스템인 ‘에듀파인’ 도입에도 ‘시설사용료’ 명목으로 임대료를 달라고 말합니다. 정확히는 사립유치원 수입 중 시설사용료를 매월 지출 비용으로 회계처리해 달라는 주장입니다. 국공립유치원에는 연간 5억5,000만 원 수준의 시설사용 임차료가 지급된다고 합니다. 사립유치원에도 국공립유치원과 동일한 회계 기준을 적용시켜 달라는 주장입니다.
■ 사립유치원이 ‘치킨집’ 같은 자영업이라고?
매년 2조원 넘게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는 정부, 시민단체들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2조 원 중 상당수인 1조 6,000억 원에 달하는 누리과정 예산 지원금은 유아교육법 제24조 1항, 2항에 따른 국가가 학부모에게 지급하는 유아교육경비라는 설명입니다. 방과후과정비 역시 원아 1명당 7만 원씩 지급돼 사실상 학부모에게 돌아가는 돈이고, 교사처우개선비 역시 국공립 교사와의 근로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사립 교사들이 직접 수령하는 돈이라는 겁니다.
교사 기본급보조금(2,500억 원)과 학급운영비(800억 원)도 국가가 사립유치원 원비를 국공립유치원 비용의 절반 수준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데 따른 보상금 성격이라고 주장합니다. 엄청난 혈세가 투입됐다는 것은 과장된 얘기란 거죠. 심지어 한유총 한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을 ‘치킨집’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치킨집 운영하는데 정부 감사를 왜 받아야 하느냐며 억울해했죠.
■ 절대 물러설 수 없다! 회계 비리는 반드시 막아야 해
한편 정부 교육당국은 단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고 합니다. 이번 사립유치원 논란의 배경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원장과 설립자가 원비로 명품 가방을 사거나 개인 대출을 갚는 등 회계 부정 사례가 밝혀진 뒤 시작된 것이죠. 이 회계 처리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대책으로 ‘에듀파인’ 도입을 의무화한 것인데 이를 거부하는 건 ‘딴 주머니’를 차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에듀파인은 예산편성과 수입, 지출, 결산 등 회계를 국가가 관리하는 시스템입니다. 국가에서 주는 누리과정비, 국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학부모 원비 등을 투명하게 관리하자는 거죠. 들어오는 돈과 남는 돈을 철저히 관리하고 혹시 남는 돈이 있다면 학부모에게 다시 돌려줘야할 의무도 생깁니다. 그동안 드러난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인 겁니다. 사립유치원 입장에서는 골치아프게 됐겠지만 말이죠.
또한 에듀파인은 모든 초중고교와 국공립 유치원은 이미 사용 중인 시스템입니다.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같은 다른 사립유치원단체들도 수용하기로 한 시스템입니다. 오직 ‘한유총’ 만이 거부하고 있는 시스템인 거죠.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회계 부정 이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설명입니다.
■ 사립유치원은 ‘치킨집’이 아니라 ‘비영리 교육기관’이거든?
교육당국은 사립유치원은 치킨집이 아니라 엄연한 ‘학교’라고 강조합니다. 교육기본법 제9조, 유아교육법 제2조에서 “유치원은 학교”라고 정의하고 있죠. 또한 사립유치원은 비영리 법인이자 정부지원금을 받는 공공유아 교육시설입니다. 공공성을 망각하고 ‘사유재산’ 운운하며 실력 행사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죠.
한 예로, 사립 초중고등학교 설립자들 역시 토지와 건물에 상당한 돈을 투자했지만 시설사용료는 받지 않습니다. 더욱이 사립유치원은 초중고와 다르게 폐원 시 개인 자산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느냐 묻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미 ‘교육기관’으로서 상당한 혜택들을 받아왔다고 설명합니다. 유치원 땅과 건물에 대한 취득세, 재산세도 감면해주는 데다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도 안 매기죠. 다만 제도적 미비로 사립유치원이 그동안에는 영리적으로 운영된 측면이 있는데 이제 이를 바로잡자는 게 핵심입니다.
정부는 꽤 오랜 시간동안 유아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번번이 사립유치원단체 특히 한유총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2002년에는 공립유치원 확충 저지 집회, 2004년에는 유아교육법 관련 입법 로비, 2012년에는 회계정비 저지, 2016년 정부 재정지원 확대 요구, 2017년 국공립 유치원 확대정책 폐기 등을 놓고 수도 없이 ‘집단휴원’ 투쟁을 벌였죠. 당시엔 정부와 협상이 진전되며 큰 사태를 막아왔지만 이번에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정부 판단입니다.
■ 정부 “설립허가 취소” 강경책 불사…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육부는 5일 개학을 연기했던 239곳의 사립유치원에 대해 정상개원 여부 확인에 나섰습니다. 만일 정상적으로 개원하지 않았다면 검찰에 고발하게 됩니다. 개원 연기 투쟁을 주도한 한유총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사업자 단체의 불법 단체행동’으로 보고 공정위 신고에 들어갔습니다.
서울시교육청도 한유총 법인에 대한 설립허가 취소 처분을 그대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이날 오후 법인 취소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이후 법인 취소 관련 공문을 한유총에 보낼 예정입니다. 한편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만간 거취 표명 기자회견을 열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문제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습니다. 정부가 꾸준히 유아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2년 뒤인 2021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을 매년 550개씩 늘려 현재 25% 수준인 어린이집·유치원 공공보육 이용률을 40%까지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한국 공공보육 이용률은 프랑스, 스웨덴(80%)과 OECD국가 평균(67%)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죠.
남은 것은 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개정안 등 ‘유치원 3법’에 대한 국회 처리입니다. 여전히 지지부진하죠. 유치원 3법은 지난해 12월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현재 교육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과도한 처벌 규정’이라며 입법 내용에 반대 뜻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여야의 노력으로 합의가 원만히 진행된다고 봤을 때 빨라야 오는 8~9월에 법안이 처리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