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강레오의 테이스티 오딧세이] 벚꽃 필 무렵 찾아오는 '섬진강 벚굴'…하얗고 통통한 살 입안 한가득 터져

맛·향 밸런스 좋고 개성 뚜렷

새콤한 달래장 곁들이면 좋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메뉴 중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해산물모듬’(Fruit de Mer)이라 말할 것 같다. 프랑스나 영국을 방문하면 꼭 찾게 되는 메뉴다. 이 메뉴를 빛내는 재료는 단연 굴이다. 얼음이 가득 깔린 큰 쟁반에 여러 품종의 굴을 잔뜩 늘어놓고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쟁반 위에는 랍스터와 살이 꽉 찬 게, 각종 조개류와 소라도 잔뜩 있지만 그래도 일 년 내내 여러 품종의 굴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내겐 가장 큰 매력이었다. 우리나라도 해양 수산 기술이 발전해 일 년 내내 이렇게 굴을 먹을 수만 있다면 요리사로서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섬진강 ‘벚굴’/서울경제DB섬진강 ‘벚굴’/서울경제DB



꽃피는 춘삼월 봄날, 굴 제철도 다 끝난 마당에 무슨 굴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경남 하동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벚굴’의 제철은 벚꽃이 필 무렵이다. 섬진강 하류에 아직은 조금 차갑지만 시원하게 부는 봄바람 내음이 ‘벚굴의 향기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섬진강의 향이 오묘하게 느껴진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의 고원에서 시작돼 전남 곡성과 구례를 지나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을 거쳐 다시 경남 남해에 이른다. 그야말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굽이치며 가로지르고 있다.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 바로 섬진강 망덕포구가 벚굴의 고향이다. 독특한 생장 조건으로 인해 벚굴은 그 어떤 굴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바닷물의 짠맛과 민물의 시원함이 동시에 느껴지고 맛과 향의 밸런스가 좋아 개성이 뚜렷하다. 게다가 그 크기는 어떤 굴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일반 굴보다 5~10배 정도 큰 크기로 한입에 넣기가 힘들 정도다.

벚꽃이 필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해 벚굴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섬진강 바닥에서 주로 자라는 벚굴은 보통은 개펄에 박혀 자라기도 하고 바위에 붙어 자라기도 한다. 주로 3~4년생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어부들은 일일이 벚굴을 채취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강바닥으로 들어간다. 수심 3m 정도를 들어가서 보면 벚굴의 모습이 하얀 벚꽃 같아 보인다고 해 이름을 붙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벚굴을 손질할 때는 가위를 사용해 굴의 넓고 납작한 부분을 잘라낸다. 껍질과 껍질 사이에 틈을 만들어 날이 잘 들지 않는 스테이크 나이프 등을 이용해 굴 껍데기 안쪽에 붙어 있는 관자 부분을 잘라 껍질을 벗긴다. 워낙 크기가 커서 손질이 다소 까다로워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일반 석화보다도 손질이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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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속살을 발라내 초장, 마늘, 고추, 묵은지 등을 곁들여 생으로 먹는다. 이 밖에 구이, 튀김, 전, 찜, 죽, 탕 등으로 다양하게 조리해 먹지만 왠지 다 상상이 되는 맛이다. 4월까지가 제철로 산란기에 접어드는 5월에는 잘못하면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높아 절대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복잡한 요리가 많은 프랑스의 굴을 먹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레몬즙을 뿌려 먹거나 타바스코소스를 뿌리는 사람도 있고 ‘블러드 메리’라는 소스를 얹어 먹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스는 ‘샬롯 비네그렛’이다. 샬럿을 다져 레드와인 식초를 부어 끓기 직전까지 열을 살짝 가하고 샬럿에 레드와인 식초를 스며들게 만들어 차게 식힌 소스다. 이 소스를 티스푼을 사용해 한 숟가락씩 굴 위에 끼얹은 후 한입에 털어 넣어 먹는 그 맛은 환상적이다. 거짓말 좀 보태서 혼자 100개는 먹을 수 있는 맛이랄까.

벚굴을 먹을 때는 적어도 티스푼 3개 정도 이상은 얹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벚굴의 하얗고 통통한 살이 입안에서 터지며 약간 느끼할 수 있는 맛을 샬럿 비네그렛이 깔끔하게 정리해 향을 은은하게 잡아준다.

요즘 한창 제철인 달래를 사용해 달래 장을 새콤하게 만들어서 벚굴 위에 얹어 먹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콤 쌉쌀한 달래 향과 와인 식초의 새콤함이 벚굴에 새 옷을 입혀주는 느낌이 들 것 같아 기대된다. 집에 가서 빨리 만들어 봐야겠다.

/반얀트리 F&B 총괄 이사·셰프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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