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항공·이통사도 줄줄이 인상 거부…'현대차 협상' 전철 밟나

카드수수료 인상 통보에 "업황 안좋다" 저마다 손사래

대형가맹점 첫 협상부터 '백기'…동력 잃고 답답함 토로

"갈등 불씨 지핀 금융당국이 결자해지 나서야" 지적도




신용카드사들이 대형마트·백화점·항공사·이동통신사와의 수수료 협상을 앞두고 막막함을 토로하고 있다. 대형 가맹점 중 첫 협상 대상인 현대자동차로부터 0.05%포인트 수준의 수수료율 인상을 얻어내는 데 그치면서 다른 업종과의 협상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카드 업계는 대형마트·항공사·통신사 등으로부터 수수료율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문을 잇따라 전달받고 있다. 카드사들은 연 매출 500억원을 초과하는 대형 가맹점들에 지난 1월 수수료 인상을 통보하고 이달부터 새 수수료율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마트 등 대형마트의 경우 수수료율을 기존 1.96%에서 2.1~2.2%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전달 받았다. 하지만 매출 부진에 빠진 유통 업계는 수용 불가 의사를 밝히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 1위 업체인 이마트의 반발이 극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4·4분기 영업이익이 61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9% 감소하는 등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데 수수료 인상에 따른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04년에도 이마트는 비씨카드와 가맹계약을 해지한 적이 있다. 2.1~2.2% 수준의 수수료율 인상을 통보 받은 백화점도 비슷한 이유로 카드사의 수수료율 인상안을 거부하고 있다.


다만 현대차와의 갈등으로 일부 카드사들이 잠시 계약 해지 사태를 빚었던 전철을 다시 밟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카드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몇 년에 한 번 구매하는 차와 달리 대형마트는 매달 가는 곳이라 카드 결제가 어려워질 경우 고객의 불편이 크게 초래될 수밖에 없다”면서 “더구나 대형마트도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가 경쟁하고 있어 카드사 입장에서는 협상력의 우위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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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5G) 투자에 여념 없는 통신사들도 카드 수수료 인상안에 퇴짜를 놓고 있다. 카드사들은 지난달 초 SK텔레콤·KT·LG유플러스에 가맹점 수수료율을 기존 1.8% 수준에서 2.0~2.1%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통신사는 연체 리스크가 낮다며 수수료 인상 근거에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통신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신비는 금액이 낮은 데다 연체할 경우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쳐 연체율이 낮은 편”이라며 “올해 5G 상용화를 위해 투자가 급증할 수 있어 비용 절감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통신 업계는 수수료 비용까지 겹칠 수 있어 반발이 거세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2,018억원으로 전년 대비 21.8% 감소했으며 KT와 LG유플러스의 영업이익도 각각 8.3%, 11.5% 줄었다. 이 때문에 카드 업계는 통신사가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이 밖에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항공 업계도 최근 카드 수수료율 인상에 대해 항의하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카드사들은 항공사들에 수수료율을 기존 1.9%에서 2.1%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신용카드사와 대형마트 간 수수료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 고객이 대형마트에서 모바일 카드로 결제를 하고 있다.  /서울경제DB신용카드사와 대형마트 간 수수료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 고객이 대형마트에서 모바일 카드로 결제를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이 같은 대형 가맹점의 반발은 현대차와의 수수료 협상을 계기로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카드사들은 현대차에 수수료율을 기존 1.8%대에서 최소 1.9% 초반 수준으로 인상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현대차는 0.01~0.02%포인트 수준의 인상안을 제시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현대차는 신한·삼성·롯데카드 등에 가맹점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며 0.04~0.05%포인트 수준으로 인상하는 조정안을 전달했다. KB국민·현대·하나·비씨·NH농협·씨티카드가 먼저 이를 수용했고 신한·삼성·롯데카드도 현대차와 협상을 타결하면서 수수료 갈등은 봉합됐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카드사들이 현대차에 백기 투항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카드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와의 협상은 다른 업종과의 협상에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했다”면서 “대형 가맹점과의 대결 구도가 불리하게 흐르고 있는 만큼 예년보다는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드 업계와 대형 가맹점 간 ‘수수료 전쟁’이 확전되면서 갈등의 불씨를 지핀 금융 당국이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 연매출 500억원 이하 가맹점까지 수수료 인하 대상에 포함하면서 카드사의 ‘갑’인 대형 가맹점으로부터 수수료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카드 수수료 종합개편방안에 따르면 적격비용 이하 수수료율을 적용 받는 우대 가맹점의 범위는 영세·중소 포함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대폭 확대됐다. 연매출 100억원 이하, 100억~500억원 이하 구간 가맹점도 각각 0.3%포인트, 0.22%포인트 평균 수수료율이 인하됐다. 카드 업계는 연 수익 8,000억원이 감소하고 올해부터 3년간 순익이 1조5,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카드사들이 불만을 표출하면서 금융 당국은 여신전문금융업법을 적용해 부당한 수수료율을 요구하는 가맹점을 처벌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실제로는 처벌한 전례가 없다. 이와 관련해 카드사 노조는 향후에도 대형 가맹점과의 수수료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며 수수료율 하한선을 제도적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카드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마케팅 비용에 부합한 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면서 “카드사의 생존을 위해 당국이 지원 사격에 나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기혁·서민우기자 coldmetal@sedaily.com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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