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책꽂이-나는 기자다]초짜 기자 키운 건 '새로움 향한 갈망'

■최남수 지음, 새빛 펴냄

본지 재직시절 '대여금 특종'부터

대기업·방송사 넘나들며 활약한

최남수 前 YTN 사장 30년 언론인생

속도감 있는 문체로 생생히 풀어내





‘나는 기자다’의 저자인 최남수 전 YTN 사장‘나는 기자다’의 저자인 최남수 전 YTN 사장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청년은 세상을 바꾸는 언론인이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지난 1983년 신문사에 취직했다. 5~6년이 흘러 기자 일에 점점 재미를 붙여가던 무렵, 기업 회장들이 자신의 회사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쓰는 행태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늘 자금 부족에 시달렸던 기업들은 높은 금리를 감수하면서 금융기관에서 돈을 대출했다. 반면 회장들은 ‘대여금’이라는 희한한 명목으로 회삿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다.

혈기왕성한 기자는 기업이 높은 금리로 대출한 돈을 이보다 낮은 금리로 다시 빌리는 것은 명백히 기업에 손해를 안기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 문제를 파고든 심층 기사는 신문의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됐고 얼마 안 가 대여금의 금리를 기업의 차입금리보다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이제 막 서른 줄에 접어든 젊은 기자가 낚아올린 특종이 더 나은 세상을 유도하는 마중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기자다’는 30년 넘게 언론계에 몸담은 최남수 전 YTN 사장이 지나온 발자취를 정리한 자서전이다. 저자는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출발해 서울경제신문을 거쳐 SBS·YTN 등에서 활약했다. 언론계를 잠시 떠나 삼성화재 부장으로 2년 동안 일했으며 2017년 말에는 YTN의 사장으로 취임했으나 노조의 반대로 128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자서전은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정책 담당자와의 인연부터 진정한 기자로 거듭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언론사 기자와 대기업 부장, 방송사 경영진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든 저자의 삶은 ‘도전 정신’이라는 단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펜 대신 마이크를 잡은 것도, 40대의 나이에 방송사를 그만두고 미국에서 MBA 학위를 딴 것도 새로움을 향한 갈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최 전 사장은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끊임없이 도전’할 때 ‘삶의 멋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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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전문채널인 YTN을 혁신하겠다는 꿈이 좌절된 순간을 서술하는 대목에서는 짙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2017년 말 YTN 사장 자리에 오른 저자는 수익 다변화와 투명한 경영구조 확립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조는 ‘박근혜를 찬양하고 MB를 칭송한 언론인’이라는 낙인을 찍고는 곧바로 파업에 돌입했다. 저자는 당시 노조의 주장에 오해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 빛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서울경제신문에서 겪었던 일화들은 각별한 애정 속에 상당한 분량으로 기술된다. 저자는 서울경제신문을 ‘든든한 기자 DNA를 심어준 곳’이라고 돌이키면서 당시 함께 일했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이름을 하나씩 소환한다. 기업 회장의 대여금 문제를 꼬집은 특종도 본지 기자로 활약하던 시절 보도한 기사였다.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단련된 문체 역시 특별히 언급할 만하다. 대다수 문장이 간단명료한 단문으로 제시되고, 아무리 길어도 웬만해서는 두 줄을 넘지 않는다. 속도감 있는 문체는 변화와 굴곡이 많은 저자의 삶과 어우러지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해준다.

소설가 김훈은 언론인 시절 “기자는 자기 신발에 묻은 흙을 독자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회 현상을 냉철히 분석해야 하는 기자가 감상적인 자기 연민에 빠져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지적한 얘기였다. 말하자면 ‘나는 기자다’는 일생을 언론인으로 살아온 저자가 예비 저널리스트를 위해 뒤늦게 보여주는 ‘신발의 흙’과 같은 책이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는 이 당당한 제목의 책은 한 언론인이 전투를 치르듯 치열하게 현장을 누비며 마주한 고충과 아픔, 그리고 이를 뛰어넘는 희열을 가감 없이 기록한다. 1만5,000원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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