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걱정 말아요" 눈에 낀 '먹구름'

이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안과 교수




찰리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 ‘모던 타임스(Modern Times·1936)’는 ‘당신이 그저 미소를 짓는다면 인생은 여전히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영화에서는 채플린이 직접 작곡한 아름다운 곡들도 흘러나왔는데 여기에 가사를 붙인 노래 ‘스마일’을 지난 1954년 미국의 냇 킹 콜이 불러 유명해졌다.

필자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막내딸의 미소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망막박리 환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응원가이기 때문이다. “웃어보아요. 하늘에 먹구름이 있더라도 당신은 이겨낼 수 있어요. 아마 내일 구름을 뚫고 빛나는 태양을 보게 될 거예요.”


망막박리는 눈에 ‘먹구름’이 끼는 병이다. 처음에는 검은 점들이 눈앞에 많이 보이면서 번쩍거리는 증상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맑은 하늘에 검은 커튼이 나타나 수 시간 또는 수일에 걸쳐 세상을 점점 가려간다. 환자 중 한 명은 그 공포의 경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세상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어요. 죽음이 다가오는 것처럼 무서웠지요. 앞으로 다시는 세상을 못 볼 것 같았어요.”

망막박리라는 병은 매년 인구 2만명 중 1명에게 생긴다. 5,000만 인구를 가진 우리나라는 매년 2,000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한다고 추정된다. 우리의 눈을 카메라에 비유하면 망막이라는 필름은 눈 안쪽에 벽지처럼 발라져 있고 눈 속에는 투명한 풀 같은 물(유리체)이 차 있다. 노화·근시·외상으로 ‘벽지 필름(망막)’에 구멍이 생기면 눈 속에 있던 물이 그 구멍으로 들어가 벽지 뒤쪽에 고이게 된다. 결국 들뜬 망막 부분은 볼 수 없게 된다. 물이 계속 들어가서 망막이 다 떨어지고 나면 눈앞은 캄캄한 암흑의 세상이 된다.


수술은 벽지에 생긴 구멍을 메워서 더 이상 물이 벽지 뒤쪽으로 들어가지 않게 한다. 먼저 벽과 벽지 사이에 고인 물을 빼낸 뒤 스펀지 조각을 눈 바깥에 붙여 벽을 눌러서 구멍이 생긴 벽지에 붙여주고(공막 돌륭술) 구멍 주위를 얼려 흉터를 만들면 물이 더 이상 그 구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망막박리가 심한 경우에는 눈 속을 채우고 있는 유리체를 제거(유리체 절제술)하고 벽과 벽지 사이에 고인 물을 빼낸 뒤 벽지의 구멍 주위를 레이저로 지진다. 눈 속에 가스를 채워 가스가 미는 힘으로 벽지가 붙도록 환자에게 1~2주 동안 엎드린 자세를 유지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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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년 전만 해도 프랑스 대백과사전에 ‘망막박리는 불치병’이라고 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0중 8~9명은 수술로 망막을 다시 붙일 수 있다.

15년 전 병아리 망막 전문의 시절 나이가 지긋한 교수님이 제일 좋아하는 취미가 무엇이냐고 내게 물으셨다. 망설이지 않고 씩씩하게 “망막박리 수술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교수님은 “허! 그게 뭐야” 하고 웃으셨다. 수술이 간단하고 쉽고 결과도 좋아서였을까. 그렇지는 않다. 수술시간이 오래 걸리고 난도도 높고 밤에 응급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그때 그 병아리는 ‘망막 전문의라면 인생을 걸고 박리된 망막을 잘 붙여서 망막 환자들이 구름을 뚫고 빛나는 태양을 보게 해주는 데 일조해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망막박리 환자의 눈에 검은 먹구름이 끼었을 때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망막 전문의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수술 잘 됐습니다. 당장 안 보인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좀 웃어보세요. 그래야 돕고 있는 가족들도 힘이 납니다. 언젠가 이런 힘든 시간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분명히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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