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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시대적 갈등 풀어주는 게 출판인의 사명이죠"

사회적 어젠다 설정 주력한 '출판 운동가'

1980년대엔 주로 사회과학·역사서 발간

이후 변화 맞춰 그림책 등 출판분야 확대

"지금 시대 책은 '힐링·감동' 주는 역할

올해 '100 인생 그림책' 등 선보일 예정

독자에게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것"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가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가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시대가 원하고 필요한 책을 만드는 게 출판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은 힐링이 필요한 시대예요. 독자에게 힐링과 감동을 주는 게 출판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에게 요즘 ‘책의 힘’이 예전보다 약해진 데 대해 아쉬움이 없느냐고 묻자 대뜸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사계절출판사가 아동·청소년 책도 내지만 사회과학과 역사책을 주로 출판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였다.


더구나 강 대표는 지난 1980년대부터 책을 통해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하고 사회적 어젠다를 설정하는 데 앞장서온 대표적인 출판 운동가다. 그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언론이 정권의 눈치를 많이 본 탓에 책이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출판인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는 게 강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과거에는 책이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무기이자 힘이었고, 진실을 알리는 매체였다”며 “이제는 시대 변화에 따라 책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사계절은 시대별로 필요한 책들을 발 빠르게 선보인 출판사로 유명하다. 강 대표도 2017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을 맡아 부도를 낸 서적도매상 송인서적 회생에 적극 나서는 등 출판계 현안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뛰어난 편집기획력으로 꾸준히 스테디셀러를 내고 국내 작가 발굴과 해외 진출 등에도 성과를 내면서 여러 조사에서 ‘최고의 출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어린 시절 강 대표는 교육자였던 아버지와 대학생 언니·오빠들 덕분에 당시로서는 친구들과 비교할 수 없는 책 호사를 누렸다. 그는 “아버지가 미국 출장을 다녀왔을 때 버튼을 누르면 코끼리나 곰 우는 소리가 나는 책을 사다 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계몽사 소년소녀 전집 50권’을 사다 줬다. 언니와 오빠들은 ‘생의 한가운데’ ‘데미안’ 등 고전을 건네줬다. 책을 읽고 또 읽다 보니 표지는 너덜너덜해졌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가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가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책에는 아직도 여러 추억이 얽혀 있다. 그는 “중학생 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서부전선 이상 없다’ 등이 담긴 ‘세계전쟁선집’에 빠졌다”며 “특히 ‘개선문’을 감명 깊게 읽다 보니 나중에 주인공 라비크가 늘 마시던 칼바도스라는 술을 좋아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당시에는 칼바도스가 사과로 만든 브랜디라는 사실도 몰랐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40도가 넘어 독하지만 음미하지 않고 한 번에 털어 넣어 마시는 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술을 비롯해 그 어떤 것도 음미할 여유가 없는 혹독한 시대의 상징이라는 사실에 가장 좋아하는 술이 됐다고 한다.

이처럼 책만 있으면 행복했던 문학소녀는 대학과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출판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지식인으로 변신했다. 책을 통해 독재정권에 항거하고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했다. 편집자로서, 출판사 대표로서 자신의 이름처럼 ‘세상을 맑게’ 하는 데 온 힘을 바쳤다.

하지만 민주화·신자유주의 등을 거쳐 시대가 변하면서 사계절출판사의 책들도 사회과학·역사 중심에서 아동·청소년 등으로 저변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강 대표의 출판 철학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독자와 호흡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었다. 그는 “1990년대까지도 그림책·동화책 시장이 척박한데다 대부분 제국주의 사상을 심어주는 전집류가 많았다”며 “사계절이 거의 처음으로 그림책 단행본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와 ‘보아요’ 시리즈를 펴냈다”고 회고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또 그는 “1992년 대입시험이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평가로 전환된다는 발표가 났다”며 “다른 출판사는 준비가 안 돼 있는 차에 저희가 출간한 ‘반갑다 논리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분야로 관심사를 돌렸다.

특히 12권짜리 ‘한국생활사박물관’은 우리 민족의 100만년 생활사를 담아 큰 호응을 받았다. “한 권을 만드는 데 2억원이 들었고 출판하는데 가장 힘들었던 책”이라며 “2~3개월 만에 한 권씩 뚝딱 만들어질 줄 알았는데 훨씬 더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만화가 이현세, 드라마 작가 등이 고증을 꼼꼼하게 해줬고 감사하다는 독자 인사를 받을 때는 보람을 많이 느꼈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작가인 보르헤스는 책이란 기억의 확장이라고 했죠. 독자는 기억의 확장에 이어 메시지의 확장을 꾀한다고 생각해요. 메시지를 확장하면 저 자신은 물론 사회를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을 만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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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표가 책을 한 권 한 권 기획할 때마다 잊지 않으려는 출판 철학이다. 사계절출판사가 지난 36년간 출간한 책은 매해 80여종, 총 2,000여종에 이른다. 그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 여기에서 다들 공평하고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어떤 책을 기획하고 출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지향점은 올해 선보일 예정인 책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100 인생 그림책’은 어른들이 읽는 그림책으로 행복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긴 글보다는 짧은 글, 글만 있는 책보다는 시각적인 편안함을 주는 그림들이 많이 수록돼 있다.

강 대표는 “0세부터 100세까지 사람의 인생을 200여쪽의 그림에 담아내면서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묻고 말을 거는 책”이라며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돌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출판사 인스타그램에 화가가 직접 영어로 댓글을 달아 국내 독자들과 소통해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인문서로는 최근 ‘영화의 얼굴’이 출간됐다.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영화 자료 수집가 양해남씨가 자신이 소유한 2,400여점의 한국 영화 포스터 가운데 1950~198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 248점을 골라 소개했다. 또 뉴스타파의 이은용 객원기자가 쓴 ‘침묵의 카르텔(가제)’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동화책 ‘마당을 나온 암탉’이 내년 출간 2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해 특별판 출간을 기획 중이다. 양계장을 나온 암탉 잎싹의 이야기로 삶과 죽음, 소망과 자유 등의 주제가 담긴 동화다. 영화로도 제작돼 극장용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다 관객인 220만명을 동원했고 이후 중국으로도 수출됐다.

“제 이름 맑실은 맑은 골짜기라는 의미예요. 아버님께서 막내딸이 깨끗한 골짜기의 물처럼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죠. 그런데 제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She is...

△1956년 광주 △1975년 전남여고 △1979년 한신대 신학과 △1981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석사 △1982~1986년 한국신학연구소 근무 △1987년 사계절출판사 입사 △1994년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1995년~ 사계절 출판사 대표이사 △2001년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올해의 출판인상 △2003년 한국출판인회의 총무위원장, 한국출판인회의 소식지 ‘책과 사람’ 편집위원 △2004년 제15회 간행물윤리상(출판인쇄상 부문) △2009년 제21회 중앙언론문화상 출판정보미디어부문상 △2017년2월~2019년2월 제10대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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