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폴 로머 뉴욕대 교수는 한국과 중국이 서구 선진국을 급속하게 추격할 수 있었던 비밀로 도시화를 꼽았다. 도시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지식과 경험이 공유되고 아이디어가 축적돼 창조적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증대했다는 것이다. 도시를 무대로 집적의 경제가 이뤄지면서 생산성과 효율성이 커졌고 이것이 일자리 창출과 고소득으로 이어져 경제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게 그의 견해다. 일례로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경기 하강 국면을 겪자 대대적인 도시화와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재정을 지출하며 내수 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도시도 상품이나 서비스처럼 감동과 편의를 제공해야 기업을 유치하고 시민들의 선택받을 수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홍콩·싱가포르를 찾는 것은 물류 허브임과 동시에 무역·금융·관광 등 경제활동을 위한 인프라가 풍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항저우도 알리바바라는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 강력한 스마트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최초의 디지털 경제·블록체인 도시이자 청년 창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아시안게임도 유치하는 등 명실상부한 스마트시티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대에는 도시의 자본·노동과 함께 교육·문화, 주거여건, 도시 간 네트워크 등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입지 선호도를 결정한다. 초연결 시대인 4차 산업혁명에서 도시는 모든 기술과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이다. 도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발휘할 수 있는 기본적 토양이자 테스트베드가 된다. 도시라는 메인보드가 없다면 화려한 소프트웨어도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전용도로 없는 자율주행차, 건물 없는 스마트홈은 구두선에 불과하다. 건설산업은 신산업과 협업하며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이 우리 눈앞에서 실현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이 모든 산업과 기술의 총아가 바로 도시이다. 리처드 볼드윈 스위스 제네바 국제경제대학원 교수는 “20세기 공장의 역할을 21세기에는 도시가 담당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도시의 개발이 우리의 강점인 ICT를 발현시킬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서울 등 대도시에 취업·교육·주택 등을 집약해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산업도시·수도권 신도시·지방 혁신도시를 지속적으로 조성해 왔다. 그러나 인구집중 지역은 난개발로 인한 교통혼잡·환경오염 문제와 직면했고 산업이 쇠퇴한 불황 지역은 인구유출로 인한 원도심 쇠퇴와 정주 여건 악화를 겪었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도시재생을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과거의 무분별한 개발 대신 저성장 시대에 맞는 도시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도시의 무한 팽창보다는 입체개발, TOD(대중교통지향형 복합개발), 장기 미집행 공원 부지 활용 등을 통한 콤팩트시티·스마트시티 개발로 도시 중심부는 압축적으로 개발하면서 외곽은 친환경 지역으로 보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우리의 도시개발 방식은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선망하는 모델이다. 현재 인프라가 취약한 아프리카·남미·동남아 등 신흥개발국의 주거단지 및 신도시 건설수요는 가히 폭발적이다. 과거 도시개발을 통해 고도성장기 경제개발을 거친 우리나라가 미래의 청사진을 함께 제시한다면 개도국들을 대상으로 독보적인 수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토지수용에 관한 제도와 도시개발 목적으로 설립된 공기업 모델 등 우리 고유의 개발 노하우가 경쟁력을 가진 ICT와 접목한다면 승자독식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개발은 현세대의 경제해법이 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살아가야 할 다음 세대에게 블루오션을 개척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