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주52시간 적용]"범법자 되더라도 납기는 맞춰야죠" 한숨쉬는 기업 CEO

완충장치 없이 계도기간 끝나

대부분 업체 인력충원 불가능

"납품 못하면 아예 문닫아야"

처벌 감수하며 잔업·야근 강행




자동차 분야 대기업에 기계부품을 납품하는 중견기업 A사는 주52시간 근로단축 계도기간 종료를 목전에 둔 최근까지 인원확충을 끝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김대범(가명) 대표는 “잔업을 못하게 된 직원들이 잇따라 그만두면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대기업에 납품하기로 계약한 물량을 제때 만들어내지 못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 범법자가 되더라도 납품부터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법을 어기더라도 52시간 초과근무를 돌려 납기와 물량을 맞추겠다는 얘기다. 주52시간 근무제 계도기간 종료를 하루 앞둔 31일 서울경제신문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취재한 결과 종업원 300인 이상 기업의 상당수가 준비를 마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중 일부는 생산량을 맞추려면 법을 어기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고 있다. 4월부터는 52시간 위반 사업장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문제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가운데 44.5%가 대·중견기업에 납품하는 하도급 업체라는 데 있다. 김 대표는 “납품업체들은 법도 법이지만 일감이 끊기는 게 더 두렵다”면서 “제때 납품하지 못하면 일감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원청의 손해까지 배상해야 해 어쩔 수 없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 기업이 52시간 근무제 도입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호소하는 부분은 구인난이다. 스포츠용품 업체 B사를 경영하는 최대우(가명) 대표는 “구인공고를 내도 생산직 자체를 구할 수 없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다”면서 “52시간 근무제가 이미 도입된 300인 이상 사업장들은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들어간 사업장의 근로자들은 ‘생활비 공포’를 한목소리로 호소하고 있다. 중소 가구업체에서 근무하는 우현미(가명)씨는 “52시간이 적용되면 400만원 받던 월급이 300만원 밑으로 떨어진다”면서 “일한 만큼 수입이 생기는 대부분의 시급제 근로자들은 눈앞이 캄캄하다”고 흐느꼈다. /맹준호·박윤선·이수민기자 next@sedaily.com


[주52시간 오늘부터 시행] “물량 제때 대려면 편법 불가피...월급 100만원 깎여 생활 막막”

■기업·근로자 모두 부글부글

추가 채용·근무 교대제 개편 등 쉽잖아 중기 숨통 막혀

“시급제 타격...누구 위한 제도냐” 靑게시판 하소연 봇물



31일 인천 계양구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주52시간 근무제 계도기간이 이날로 종료되지만 종업원 300인 이상의 중견·중소기업 상당수가 준비를 마치지 못해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호재기자31일 인천 계양구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주52시간 근무제 계도기간이 이날로 종료되지만 종업원 300인 이상의 중견·중소기업 상당수가 준비를 마치지 못해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호재기자


“주52시간 근무제 때문에 납품을 제때 못 하면 누가 책임집니까. 진작 충원하지 뭐 했느냐고요? 공단에 한번 와보세요. 생산직이 척척 구해지는지 말입니다. 법을 못 지켜도 어쩔 수 없어요.” (익산공단의 중소기업 대표 K씨)

“연장수당과 주말 특근수당이 없어지면 한 달 급여가 100만원 이상 차이가 날 거라고 합니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상여·교통비·중식비 다 없어지고 딱 최저임금만 주는데 일을 더 못하게 하다니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자동차 부품 사출공장 생산직원 P씨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의 주52시간 근무제 계도기간이 31일 종료되면서 사업주와 노동자 양쪽 모두 불만이 극대화하고 있다. 대기업 납품이나 도급 분야 기업 가운데 일부는 법을 어기더라도 당분간 초과근무를 통해 납기와 물량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고 주52시간 근무제가 본격 시행되는 사업장의 근로자들은 소득 감소에 따른 ‘생활비 공포’의 현실화를 우려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52시간 근무제의 보완수단인 탄력근무제는 단위기간 확대 논의조차 사실상 멈춘 상태다.



반월공단에서 염색 업체 C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진규(가명) 대표는 ‘선제적 대응’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공장을 24시간 돌려야 하기 때문에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비해 2조 2교대에서 3조 2교대로 변경하려고 했다”면서 “염색업 자체가 3D 업종이라 생산직 막내가 45세일 정도로 인력난이 심해 추가 채용이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교대제 개편에 실패한 C사는 당분간 처벌 리스크를 안고 2교대로 운영할 계획이다. 시화공단의 전자부품 제조업체 D사의 박주성(가명) 대표는 “결국 남은 선택지는 편법 아니면 불법 아니겠느냐”며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는지, 가장 약한 수위의 처벌을 받는 방법은 뭔지 알 만한 사람들끼리 쉬쉬하며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서둘러 대응을 마무리 지은 중견 규모 기업들은 높아진 원가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주52시간 근무제에 맞춰 인력배치를 끝낸 건자재 업체 E사의 최정효(가명) 대표는 “제도 도입 이후 생산성이 확실히 떨어졌다”며 “고정비 상승 영향으로 이익률이 20~30%나 떨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 대표는 “올해 손실을 최대한 줄여보려 애쓰는 중”이라면서도 “결국 미래를 위한 신제품 개발이나 기술연구 같은 것부터 줄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시화공단 금형 업체 F사의 이진규(가명) 대표는 “주52시간 근무를 지킬 수 있도록 시스템은 갖췄지만 올해 1·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3%가량 곤두박질쳤다”면서 “그런데도 주변 회사들 사이에서 이 정도면 선방한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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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R&D) 분야도 비상이다. 중견 자동차 부품 업체 G사의 권오성(가명) 회장은 “차 부품은 10년 이상 고장이 안 나야 하기에 테스트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24시간 시험기를 돌리는 연구원들의 컴퓨터를 강제로 종료하고 그러면 무슨 R&D가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짝 할 때는 하고 신제품 개발이 없을 때는 좀 쉬엄쉬엄 하는 식으로 해야 업무가 돌아가는 R&D의 특성을 (정책 입안자들이) 너무 모른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탄력적 시간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문제는 국회 논의가 시작은 됐지만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300인·50인 등 기업 규모에 따라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시기를 차등하는 방식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선 분야 중견기업 H사의 손호용(가명) 회장은 “중견기업 평균 직원 수가 297명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한심한 일”이라면서 “300인 이상 기업이 되지 않으려고 직원 수를 맞춰놓은 것 아닌가. 그런 기괴한 일이 벌어지게 하는 게 무슨 정부고 제도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설 업계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형 건설 업체 I사 상무는 “주52시간 근무제가 당장 시행되는데 아직도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지난 2018년 7월 이전에 계약한 건에 대해서도 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공사기한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며 “공기를 맞추기 위해 우리 돈을 들여서라도 설계를 변경하려고 해도 조합에서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장당 공기가 2~3개월 정도 늦춰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인력을 더 채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하지만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인력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며 “외국인 근로자 20~30%를 써도 인력이 모자란다. 외국인 노동자 채용을 더 늘릴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주든가 뭔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호소했다. 중견 건설 업체 J사 관계자는 “인력을 늘리자니 건설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리스크가 너무 크고 공기를 늘리려면 지체부담금을 내야 한다”며 “결국은 완공까지 기간이 비교적 여유 있는 현장에서 인력을 빼내 급한 현장을 돌려막기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300인 미만인 업체들은 법 적용이 유예되기 때문에 여유가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실제 현장은 그렇지 않다”며 “건설 현장은 여러 공정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300인 이상 하청업체의 직원들이 퇴근해버리면 300인 미만 규모의 업체 직원들도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건설 업계는 15일 건설업 특성을 반영한 근로시간 보완대책을 입법해달라는 건의서를 국회 3당 정책위의장과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했다. 대한건설협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 경과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까지 허용했는데 이를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 공사의 경우 건설공사 중 70%가 계약기간이 1년 이상이기 때문에 탄력근무제 6개월 단위기간만으로는 공기 준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7월1일 이전에 발주돼 현재 진행 중인 248조원 규모의 공사는 종전 근로시간인 68시간을 기준으로 공기가 산정돼 갑자기 단축된 근로시간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주52시간 근무제의 심각한 부작용은 기업뿐 아니라 가계 부문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잔업과 특근 감소로 시급제 생산직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가 현실화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씀씀이를 줄여 대응해야 하는데 대출 원리금, 자녀 교육비 등 어떤 가정이나 줄이기 어려운 지출이 있기 마련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여성 생산직은 “주52시간 근무제로 저희 직장은 법에 따라야만 했고 육아비용과 대출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주52시간 근무제는 생산업무·연봉제가 아닌 시급제한테는 살지 말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남편과 같은 회사에서 2교대로 일하며 초등학생을 키운다는 한 청원인은 “52시간이라는 것이 누구를 위해 있나. 없는 사람은 이 법이 죽으라고 하는 것 같다”면서 “2교대를 해야 먹고살 수 있는데 그게 법에 어긋난다니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현행 임금 계산방법으로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정규 40시간과 연장 12시간으로 52시간 근무한다고 할 때 월급은 주휴수당을 포함해 239만4,530원이다. 이 사람이 만약 68시간을 근무했다면 월 326만5,268원을 받는다. 단순 계산으로도 80만원 이상 월급이 줄어드는 것이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주요국 대비 70% 수준의 매우 낮은 상황으로 그나마 선방했던 것은 근로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본격적으로 규제에 들어가면 당장 생산성과 경쟁력 약화가 불 보듯 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양질의 인력 확보가 어려운 제조업의 경우 고전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가칭) 중소기업생산성향상특별법’을 제정하는 한편 생산성 향상으로 파생되는 기업의 성과를 근로자에게 적극적으로 나누는 성과공유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맹준호·박윤선·이수민기자 next@sedaily.com

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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