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석이 돌아왔다. 연출과 연기를 겸한 감독 데뷔작 ‘미성년’을 들고서다. 그동안 하정우·박중훈처럼 내로라하는 톱스타들도 직접 연출한 작품으로는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정평 난 김윤석이 17세 소녀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성년’으로 배우 출신 감독의 흑역사를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미성년’은 김윤석이 각본·연출·연기 등 1인 3역을 소화한 작품이다. 화목했던 두 가족의 일상을 뒤흔드는 비밀을 따라간다. 닳고 닳은 소재인 ‘불륜’이 드라마의 핵심 모티브로 등장하지만 두 소녀의 시선으로 뒤틀린 가족사를 바라본다는 점이 색다르다. 쇼박스가 투자·배급을 맡은 이 영화에는 김윤석을 비롯해 염정아·김혜준·박세진 등이 출연한다.
김윤석은 지난 2014년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개최한 창작극 페스티벌에서 옴니버스 형식의 연극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 당시 무대에 오른 연극 가운데 일부분을 가져온 뒤 3년 동안의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새롭게 재구성한 영화가 ‘미성년’이다. 김윤석은 원작의 극본을 쓴 이보람 작가와 함께 각색을 진행했다.
‘타짜’ ‘추격자’ ‘황해’ 등 주로 거친 남성들의 세계를 묘사한 작품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던 김윤석은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섬세한 감정선이 돋보이는 드라마를 택했다. ‘미성년’은 일상이 지긋지긋해 불륜의 유혹에 빠지는 남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엄마, 파탄 난 가족을 바라보는 소녀 등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밀도 있게 펼쳐 보인다. 김윤석은 “어떤 사건을 마주한 인물이 회피하거나 숨지 않고 인간적인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서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성인이 된다고 성장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노력해야 성숙에 이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언론 시사회 직후 나오고 있는 영화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뛰어난 배우의 감독 데뷔작에 기대하는 장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밀고 당기는 드라마 전개가 리드미컬하고 장면의 압축력과 세공력도 좋다”고 호평했다. 영화칼럼니스트인 듀나도 “일반적인 불륜 연속극과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며 “최근 몇 달 동안 본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재밌는 작품이었다”고 극찬했다.
전문가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미성년’이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000년대 초중반 이후 상당수 연기자가 배우로 다진 입지를 바탕으로 연출 도전에 나섰으나 대부분은 안타까운 성적표를 받아들고 눈물을 삼켰다. 무수한 흥행작을 보유한 하정우가 직접 만든 ‘롤러코스터’와 ‘허삼관’은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왕년의 대세 배우였던 박중훈이 연예계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댄 ‘톱스타’ 역시 17만명 정도를 불러모으는 데 그쳤다. ‘수취인불명’ 등에 출연한 방은진은 ‘오로라 공주’ ‘집으로 가는 길’ 등의 연출작으로 가능성을 보였으나 2017년작 ‘메소드’는 흥행에 참패했다. 장준환 감독의 부인이기도 한 배우 문소리가 만든 ‘여배우는 오늘도’는 ‘미성년’처럼 개봉 전부터 평단으로부터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충무로 바깥에서 제작된 저예산 독립영화인 탓에 대규모로 관객을 만나기엔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