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권홍우 선임기자의 무기이야기] 세종대왕함급 차기 이지스함 '헌 집 주고 새 집' 받을까

<83> 변수 생긴 이지스 구축함 배치Ⅱ 사업

한국 해군, 2027년까지 3척 추가 도입

中 신형 함정 전력증강에 다급해진 미국

韓 납품용 시스템 자국 해군에 돌리고

신형 AN/SPY-6레이더로 변경론 제기

한국 수용 땐 건조 일정 지연될 가능성

해군 "기존 전력화 일정 지킬 것"에 무게

미국 정부 공식 요청·예산 확보가 변수로




차기 이지스함 건조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핵심 장비인 이지스 레이더 시스템의 납기 연장 또는 기종 변경론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3척을 건조할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배치(batch)Ⅱ 사업 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3년 초도함이 나온다. 나머지 2척은 2027년 건조될 예정이다. 여기에 외생 변수가 생겼다. 한국 해군용으로 납품될 이지스 시스템을 미 해군이 우선 사용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미 해군이 고쳐 쓰거나 배치해야 할 이지스구축함의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늦어지는 대신 한국 해군에 최신형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제안도 업체 차원에서 나왔다.

우리 군 당국의 이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다. “공식적으로 제안받은 적이 없으며 해군의 전력화 일정이 제대로 지켜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의 변화 조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간과하기 어렵다. 미 해군이 함정 수급상의 애로를 들어 공식 요청해 가능성이 없지 않고 신형 이지스 시스템의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신형 이지스 시스템이 중장기적으로 우리 군의 전력 증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의 이지스 시스템을 추가 도입할 예정인 일본도 같은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조짐이 변화로 현실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 이지스 후속 사업 순항 중이지만…=해군이 이지스구축함을 확보한 시기는 지난 2008년. 서방국가 기준으로는 여섯 번째 이지스 시스템 도입 국가가 됐다. 미니 이지스와 유사 이지스를 합치면 세계에서 딱 100번째 이지스함이 바로 세종대왕함이었다. 다만 미국의 이지스구축함인 알레이버크급과 같은 규모, 비슷한 성능을 갖는 함정을 보유한 국가로는 세 번째였다. 스페인과 노르웨이, 호주 등도 미국제 이지스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축소형 버전이다. 지금도 미국제 오리지널 이지스 시스템을 운용하는 나라는 한미일 세 나라뿐이다.

세종대왕급을 건조할 당시 우리 해군은 미국의 중재로 일본 해상자위대와 공동 구매 형식을 취했다. 한꺼번에 만들면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2차 사업도 마찬가지다. 우리 해군이 추가로 건조할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batchⅡ 3척에도 1차 사업과 같은 AN/SPY-1D(V) 레이더가 탑재된다. 우리 해군은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사와 계약을 맺고 지금은 각종 무장과 이지스 시스템과의 연동 운용을 연구하는 단계를 밟고 있다. 계획대로 순항하고 있는 셈이다. 한미일 세 나라는 차기함을 위한 이지스 공동구매 계약을 2015년 10월에 맺었다. 미 해군의 알레이버크급 후기형(25세트 이상), 한국의 세종대왕함 후속함(3세트), 일본 27DDG(2세트)에 들어갈 AN/SPY-1D(V) 레이더를 공동 구매한다는 계획으로 현재도 사업이 진행 중이다.


◇다급해진 미 해군=문제는 미 해군이 바빠졌다는 점이다. 알레이버크급 이지스구축함 67척을 건조했으나 27번함 이전까지는 구형인 AN/SPY-1B를 탑재해 개량 및 교체 수요가 많다. 반면 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신형 함정을 과자 찍듯 뽑아내고 있다. ‘중국판 이지스구축함’으로 불리는 052D급(만재배수량 7,300톤)을 2012년 8월 처음 건조한 이래 13척이나 진수했다. 11척을 추가 건조 중으로 모두 26척을 취역시킬 예정이다. 052D급만으로도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포함해 동북아의 모든 이지스 구축함보다 많은 함대방공 구축함을 보유할 중국은 1만3,000톤짜리 055급 구축함을 6척을 건조 중이다. 3척의 추가 건조가 확정된 가운데 무려 20척을 더 만든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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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80m로 미국 줌왈트급 구축함과 더불어 ‘2차대전 이후 새로 설계된 최대 길이의 전투함정’이라는 055급과 항공모함 4척을 확보하려는 중국에 대응하는 미국은 이렇다 할 추가 건함 계획이 없는 실정. 기존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가운데 신형을 주로 투입하니 함정과 장병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상선·컨테이너선 등과 잇따르는 충돌로 인명사고를 내고 함대 사령관까지 경질되는 사태의 이면에는 노후 이지스함을 운용하기 어렵다는 고충이 깔려 있는 셈이다. 미 해안경비대 함정의 동북아 훈련 참가가 잦아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은 주저했는데…=미국은 최신형 이지스 레이더인 AN/SPY-6를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다. 줌왈트급의 이지스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킨 AN/SPY-6는 최근에야 신뢰성을 확보한 상태다. 미 해군으로서는 교체 및 신규 건조 함정에도 당분간 AN/SPY-1D(V)를 장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 물량은 한미일이 발주한 물량밖에 없는 형편에서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다.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양해를 구해 먼저 사용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이에 대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이지스함인 공고급 4척과 아타고급 2척에 AN/SPY-1D(V) 레이더가 장착되고 준이지스함에는 일본판 이지스 시스템이 적용된 마당에 AN/SPY-6 시스템을 새로 들여오면 3개 시스템 운용에서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국산 이지스 시스템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진수 예정인 27DD급에 새로운 시스템을 장착하기에는 시간도 촉박하다.

◇한국의 선택은?=한국 해군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는 있지만 이미 사업을 진행 중이라는 점은 같다. AN/SPY-1D(V) 도입을 전제로 28개월째 함정 설계와 운용 계획을 마련해나가는 단계다. 미국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제안이 없다는 점도 아직은 걸리는 대목이다. 신형 AN/SPY-6 레이더 제작사인 레이시온사가 올해 초 제안한 게 전부다. 해군이 사용 중이며 추가 도입할 AN/SPY-1D(V) 역시 장기적으로는 미 해군처럼 정비해야 하고 신형 AN/SPY-6 레이더의 성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걸림돌이 많다.

먼저 기존 계약과의 상충 문제 해결이 전제돼야 한다. 신형 시스템을 제안하는 데도 대놓고 반색하지 않는 데에는 제작사에 대한 누적된 불만도 작용하고 있다. 한국 해군이 림팩 훈련에 발사했으나 수차례 불발된 대공미사일의 귀책사유가 제작사에 있음에도 문제 해결과 배상에 미온적이었다는 피해 의식과 선입견도 강하다. 물론 군 당국도 신형 이지스 시스템의 장점에는 공감한다. 기존 AN/SPY-1D(V)보다 탐지 거리가 두 배에 달하고 표적 획득과 판단 시간은 훨씬 짧다는 장점은 있지만 최소한 세 가지가 걸린다.

첫째는 미국 정부 차원의 제안. 한 당국자는 정부 간 또는 군 당국 간 이와 관련한 공식·비공식 접촉은 물론 설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당국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으나 정부 차원의 검토에 나서기는 섣부르다는 판단이다. 두 번째, 신형 이지스 시스템이 가격이 훨씬 비싸다. 기존 이지스보다 최소 1.5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는 우리 군의 전력화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종합하면 현재로서는 재계약에 수반될 복잡한 이해관계의 해소와 미 정부의 보증이 없는 한 신형 이지스 시스템 도입은 업계 제안 수준을 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지스구축함 추가 건조론이 나오고 한국형 이지스구축함(KDDX) 계획이 잡힌 상황이라면 AN/SPY-6의 도입과 기술 이전은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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