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 붐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촉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늘어는 세 부담에 집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나면서 다주택자들을 중심으로 자녀 등에게 부동산을 물려주는 행위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집값이 많이 오른 강남 4구에서는 증여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강남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강남을 중심으로 매매 대신 아예 이른 증여를 통해 장기적으로 절세하는 방안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증여가 부의 대물림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 비싼 동네일수록 증여 많이 이뤄져 =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주택 증여 건수 2만 4,765건 중 강남·서초·송파·강동 등 강남 4구의 주택 증여 건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서초구는 지난해 2,212건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였던 전년(1,107건)의 2배 가까이 뛰었다. 강남구는 지난해 2,782건으로 전년(1,077건)의 2.6배, 역대 최고치였던 2014년 1,315건의 2배가량 올랐다. 송파구는 지난해 1,962건으로 전년(961건)의 2배 이상, 역대 최고치(1,311건·2016년)의 1.5배 늘었다. 강동구도 지난해 1,470건으로 직전 최고치(1,356건·2017년)보다 소폭 올랐다.
이처럼 강남의 고가 주택이 몰려있는 지역에서 증여거래가 급증한 것은 지난해 4월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가 시행되면서 집 부자들 사이에서 세금을 줄일 수 있는 자녀에 대한 사전 증여가 유행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신규 분양 아파트나 새로 취득한 주택에 대해 부부 간 증여가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인별 과세인 종부세를 줄이기 위해선 가족 간 소유권을 분산시키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 주택 증여 건수가 가장 높았던 달은 3월(1만 1799건)이다. 4월부터 시행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의 영향으로 증여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7,000~9,000건대를 유지하던 증여 건수는 7월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이 나오면서 8월(1만 130건) 1만 건대로 뛰었다.
◇ 공시가 인상, 늘어난 세 부담도 원인 = 공시가격 인상도 증여에 한 몫을 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 공시가격이 오르면 증여세 부과의 기준이 되는 증여 재산 가액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이 오르기 전에 주택을 증여한 사례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9월 7,540건으로 다소 내려앉았던 증여 건수는 9·13 대책 발표 이후인 10월 또다시 1만 270건으로 대폭 늘었다. 대책 이후 종부세 세 부담 상한이 크게 오른 데다, 사상 최고 세율을 규정한 종부세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해 최종 확정된 탓으로 풀이된다. 임대사업자 혜택 축소도 영향을 미쳤다. 대책은 지난해 하반기 내내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줬다. 증여거래는 11월 9,568건, 12월 1만 117건을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 이미 한 차례 증여 바람이 불고 난 뒤 올해 2월 들어서는 증여 건수가 소폭 줄었다. 지난해 12월 2,178건에 달하던 서울 주택 증여 건수는 올해 1월 2,457건에 달했다가 올해 2월에는 1,132건을 기록했다. 강남구가 1월 137건에서 2월 76건으로 줄었고 도봉구(19건->33건), 강북구(20건->36건) 등은 늘었다.
◇ 늘어난 증여, 거래가뭄에도 영향 = 다주택자들이 아파트를 팔기보다는 가족에게 증여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매매 시장은 더욱 극한의 거래절벽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신고된 월별 아파트 거래 신고 건수를 보면 9·13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다음 달인 10월 1만 96건이었던 서울 아파트 거래는 11월 3분의 1수준인 3,526건으로 떨어졌고, 12월엔 2,279건, 올 1월엔 1,867건까지 곤두박질쳤다. 설 연휴가 끼어있는 2월엔 1,576건 거래신고가 되는 데 그쳤다. 본격적 봄이 시작된 3월에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였다. 3월은 1,791건을 기록했고 다만 4월 들어서는 하루 평균 85건을 기록하고 있어 전보다는 거래가 좀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4월 말에는 공시가격이 확정되고 6월엔 재산세 고지서가 날아 들면서 다주택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 공동주택 1,339만 가구 공시가격은 지난해보다 평균 5.32% 올랐다. 시도별로는 서울 인상률이 14.17%로 가장 높았다. 2007년(28.5%)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보유세 부담이 커진 다주택자들의 경우 팔거나, 버티거나, 증여하거나 3가지 선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세무팀장은 “서울에서 먼저 증여 붐이 일고, 이것이 지방으로 확산 되고 있다”며 “부담부증여를 포함한 증여 관련 상담이 많으며, 여기에 올해 공시가격이 크게 올라 지방 다주택자들도 증여를 포함해 포트폴리오 정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