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들이닥친 지난 4일 밤 산불 현장에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주민 생명을 구한 구조대원과 시민들의 활약상이 뒤늦게 알려져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7일 강릉소방서에 따르면 장충열 강릉소방서 119 구조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은 옥계면 남양3리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이들은 대피하고 있는 어르신 2명을 먼저 구했다. 이들은 연기를 마신 상황 속에서도 마을에 치매 할머니가 있는데 아마 집에서 못 빠져나왔을 것 같다고 대략적인 주택 위치를 대원들에게 알려줬다.
장 대장을 비롯한 대원 3명은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갔다. 불길이 이미 주택가로 덮친 위험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문은 모두 자물쇠로 잠겨져 있었다. 슬러브 구조 주택이라 집 전체에 불이 옮겨붙지는 않았지만 가스통까지 불이 근접해 있는 상황이었다.
대원들은 침착하게 유리창을 깬 뒤 집 내부를 살폈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80대 할머니 A씨가 홀로 방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원들은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불길과 연기 속에서 할머니를 무사히 구조했다. A씨 가족들은 치매를 앓고 있는 A씨가 홀로 집 밖을 나갈까 봐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외출한 상태였다.
장충열 강릉소방서 119 구조대장은 “처음에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주민들이 어디 어디에 사람이 있을 것 같다고 자기 일처럼 알려줬다”며 “소방대원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 전체가 구조에 일등 공신이다”고 공을 돌렸다.
소방대원들이 화염과 자욱한 연기 속에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자 1㎞를 걸어서 진입해 구조한 사례도 있다.
속초 한 요양원에 어르신과 수녀, 요양보호사 60여 명이 고립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성소방서 대원 9명은 불길과 연기에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자 25㎏에 달하는 무거운 장비를 매고 1㎞를 걸어가 구조했다.
김진석 고성소방서 주임은 “어떻게든 현장에 빨리 도착하는 게 우선이었다”며 “대원들이 소화전을 점령해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동시에 구조작업을 진행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소방대원뿐만 아니라 곳곳에 시민 영웅들도 있었다. 천남리에 사는 유여선(87) 할머니는 잠이 들었다가 불이 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뛰쳐나왔지만 이미 마을 주민들이 다 대피하고 홀로 남은 상황이었다.
몸이 불편해 멀리 가지 못하고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침 택시 한 대가 홀연히 나타나 유 할머니를 태웠다. 이 택시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처 대피하지 못한 어르신들을 대피시켰다고 한다.
배달 오토바이 활약도 뛰어났다. 바로고 소속 배달대행 오토바이 기사들이 화재 당시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좁은 길 곳곳에서 주민들 대피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밤늦은 시간 민가를 덮친 이번 강원산불 현장에서 인명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었던 데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일처럼 생명을 구조한 소방대원들과 숨은 시민 영웅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