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암 김도화(1825~1912)는 영남에서 활동한 조선 말기의 대학자이자 의병장이다. 퇴계학통을 이어받아 후학을 양성하던 그는 1895년의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저항해 안동의 유학자들과 함께 ‘안동통문(安東通文)’을 돌려 일제의 국권 침탈을 규탄했다. 1896년 1월에는 안동을 거점으로 한 항일 의병부대 안동의진(安東義陣)을 결성했고 71세의 나이로 2대 의병장으로 추대된 대표적인 항일의병장이다. 그해 9월 안동의진이 해산하고 을사늑약(1905년)을 거쳐 1910년 한일 강제병합에 이르자, 척암은 자신의 집 대문에 ‘합방대반대지가(合邦大反對之家)’라고 써 붙이고 상소를 올리는 등 끊임없이 일제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척암이 생전에 남긴 글을 모아 1917년에 간행된 책 ‘척암선생문집책판’이 유럽을 떠돌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2월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경매에 오스트리아인 가족이 오래전부터 보유한 책판이 출품됐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지난 달 14일 열린 경매에서 라이엇게임즈가 후원한 자금을 활용해 5,000유로(약 640만원)에 유물을 낙찰받았다.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게임즈는 앞서 조선 불화 ‘석가삼존도’와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귀환에 기여한 대표적 문화재지킴이 기업이다.
귀환한 척암선생문집책판은 가로 48.3㎝, 세로 19.1㎝, 두께 2.0㎝다. 책판 손잡이인 마구리는 양쪽 모두 사라졌고, 한쪽 면은 금색 안료로 칠했다. 이 책판은 척암 문집을 찍기 위해 1917년 무렵 제작한 책판 1천여 장 중 한 장으로, 김도화가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설명한 권9 23∼24장에 해당한다. 이전까지 확인된 척암선생문집책판은 20장으로, 모두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품이다. 19장은 후손이 기탁했고, 1장은 2016년 에드워드 슐츠 미국 하와이대학 교수가 진흥원에 넘겼다. 후손이 기탁한 책판은 지난 2015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 중 일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한 김도화의 업적이 정부의 인정을 받아 1983년 대한민국 건국포장에, 1990년에는 대한민국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문화재청 측 관계자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항일의병장 척암 선생의 유물이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거쳐 마침내 독립된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뜻깊은 환수”라며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까닭에 미처 포함되지 못했던 세계기록유산의 일부를 되찾아왔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