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한 위헌 판단을 내리며 2020년 말까지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라고 주문한 가운데 ‘불법 낙태약’이 더욱 기승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낙태가 불법으로 규정됐던 과거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은 인터넷 등 음지를 통해 ‘불법 낙태약’을 구입해 직접 투약하는 등의 위험을 불사해야 했다. 이번 낙태죄 위헌 판단이 나오며 불법 시술에 대한 위험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한편 ‘불법’ 낙태약이 이제 ‘합법’을 가장한 채 시중 유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12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임신 초기 낙태는 합법이라는 헌재의 판단이 나온 현재도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는 불법 낙태약을 쉽게 구매할 수가 있었다. 실제 기자가 트위터에 ‘낙태’를 검색한 결과 낙태약 구매 사이트를 소개하는 계정으로 바로 연결됐다. 해당 사이트는 임신 10주 차 이하 임산부를 상대로 낙태약을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처는 “우리 회사의 제품은 정품”이라며 “온라인상으로만 구매할 수 있지만 전 세계 어떤 곳에서 주문해도 배송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또 “낙태가 불법인 국가에서 온라인 구매만 가능한 부분이 안타깝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매도 쉬웠다. 실제 문의한 결과 본인 여부·임신 주 수·거주 지역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제공한 후 바로 구매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가격은 임신 주 수에 따라 39만 원에서 59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으며 상담원은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사이트 등을 통해 판매되는 약은 주로 ‘미프진’이다. 임신 초기 50일 이내 사용할 수 있는 임신 중절 약으로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 의약품 목록에 포함하기도 했다. 일부 여성들은 앞으로 미프진이 국내 정식 유통돼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헌재는 낙태죄에 관해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으며 2020년 말 법 개정을 하도록 국회에 주문한 상태다. 그전까지는 현행 법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때문에 미프진이 국내 정식 유통되기까지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지금처럼 ‘불법’ 약이 암암리에 유통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다수가 낙태가 ‘합법’이라고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불법을 인지하지 못한 채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병원에서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인 ‘미프진’을 온라인 상에서 구매·복용하는 것은 건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판매처는 관련 정보에 따르면 낙태약에 대한 부작용으로는 골반 통증, 구역질, 현기증, 허리 통증,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보통 증상들은 12시간 내 사라진다. 이와 관련해 상담원은 “오프라인상에선 따로 관리가 불가능하지만 제품 관련 상세 설명서를 보내주기 때문에 괜찮다”는 반응이다. 이어 그는 ‘자가진단을 통한 부작용 예방’을 목적으로 나이·유산 경험·질병·본인 의사 등이 적힌 간단한 질문지를 보냈다. 유산 확인도 스스로 해야 했다.
온라인상으로 낙태약을 구매하기에 판매처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유통 과정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가짜’ 약을 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낙태약 사이트의 전체 방문자는 6만 3,000명에 달한다. 심지어 직접 구매하지 않아도 약을 구매할 수 있는 ‘대행 사이트’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실제 낙태약을 구매한 여성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급하고 두려운 여성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불법 유통되는 약들을 함부로 구해서 먹으면 자신의 정확한 임신 주수도 모르고 복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효가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여러모로 위험하다”며 반드시 병원을 통해 정확한 진단·처방을 받을 것을 강조했다.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